27년째 무분규 이어 오는 LG전자 배상호 노조위원장 "회사에 믿음 줬더니 월급 오르더라"
LG전자 노동조합은 특이하다. 회사와 싸우기는커녕 노조비용을 노조원에게 나눠주면서 마케팅을 돕는다. ‘노조의 사회적 책임(USR)’을 앞세워 각종 봉사활동도 한다. 27년째 무분규 기록을 이어오고 있기도 하다. 툭하면 파업을 들먹이며 회사를 윽박지르는 여느 제조업체 노조와는 다르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어용 노조’라는 얘기도 듣는다.

배상호 LG전자 노조위원장(사진)은 이에 대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펄쩍 뛰었다. 그는 29일 서울 문래동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노조의 본질은 조합원의 복지를 향상하는 것”이라며 “LG전자 노조는 이 부분에서 동종업계 어느 노조보다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고 힘줘 말했다. “회사에 믿음을 주니 급여도 예상보다 많이 오르더라”는 경험담도 잊지 않았다.

LG전자 노조가 본격적으로 ‘경영진과 상생하는 노조’를 추진한 것은 2003년부터다. 배 위원장은 “당시 경영진과 함께 해외 법인에 나갔더니 현지 사람들이 한국 노조는 싸움만 하는 ‘머리띠 노조’로 인식하고 있었다”며 “한국의 대표 글로벌 기업 중 하나인 LG전자 노조가 이런 인식을 바꿔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를 기반으로 만든 게 USR이다. 상대적으로 좋은 처우를 누리는 대기업 노조가 봉사활동도 하고 회사 이미지도 개선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회사의 사주를 받고 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없애기 위해 비용은 철저하게 조합비로만 충당했다. 그는 “직원들이 매년 받는 상여금에서 1000원 이하 잔돈을 모아 5000만원 정도를 마련해 비용으로 쓴다”고 말했다.

지난해엔 이집트를 다녀왔다. LG전자는 이집트에서 대형 가전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 법인 직원이 ‘피라미드 근처는 항상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는 얘기를 배 위원장에게 해줬다. 배 위원장과 노조원들은 회사 이름이 적힌 조끼를 입고 피라미드에 가서 쓰레기를 주웠다. LG전자가 이집트와 상생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배 위원장은 “회사를 도우면 오히려 조합원의 복지 수준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면서 2011년 임금협상 때 일화를 들려줬다. 당시 LG전자는 스마트폰 시장 진출이 늦어지면서 위기에 빠져있었다. 최고경영자(CEO)였던 구본준 부회장은 직원들의 사기 진작 차원에서 동종업계보다 높은 임금인상률을 제시했다. 그런데도 배 위원장은 “노조가 더욱 앞장서 도울 테니 직원들에게 더 과감하게 투자할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구 부회장이 기존에 제시한 인상률에 2%포인트를 더해줬다고 한다. 배 위원장은 “노조가 꾸준히 회사를 위해 애써오며 신뢰를 쌓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강조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