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오해와 진실] 신좌파는 틀렸다
자본주의에 대한 최근의 비판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건 자본주의는 각자의 선호와 삶의 목표를 추구하는 인간들로 구성된 고립된 체제여서 구성원 사이에 원활한 소통이 없다는 것이다.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이끄는 신좌파의 비판이다. 삶의 목표를 성취하고 삶의 지혜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한데 자본주의는 소통부재로 인해 구성원들이 자신의 욕구도 제대로 충족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통에 충실한 새로운 체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 체제가 숙의민주주의(熟議民主主義·deliberative democracy)다. 숙의정치의 핵심은 다 함께 모여 상하관계 없이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에서 소득분배, 공장입지, 금융배분 등 주요 경제이슈를 결정·집행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그러나 ‘자유시장=소통부재’라는 비판은 옳지 않다. 시장이야말로 거대한 소통체계라는 걸 직시해야 한다. 이 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고 항상 타인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타인의 협력을 얻어 경제적으로 성공하려면 먼저 타인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러나 자기자신도 완전히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을 완전히 안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는 법이다. 인간은 ‘무지의 늪’에서 살고 있다. 자유주의의 거성 하이에크의 말이다. 우리는 낯모르는 의사에게 아픈 몸을 맡기거나 서로를 잘 모르면서도 마음 놓고 거래한다. 수많은 익명의 사람과 거래하면서 일상생활을 영위한다. 거대한 열린 시장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익명의 사람들과 거래하기 위해서는 그들에 관한 구조적 무지를 극복해야 하는데 그 방법은 그들과 소통하는 길밖에 없다. 시장에서 이뤄지는 게 그 소통이다. 시장에서는 재화와 서비스의 교환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각자의 지식, 생각도 교환하고 소통한다. 시장에서 거래를 약속하기 전에 필요한 건 가격, 품질, 납품조건 등에 관한 대화다. 성공적인 사업을 위해 기업가는 소비자만이 아니라 경쟁 상대방의 생각, 의견, 선호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시장질서는 ‘거대한 소통체계’라 할 수 있다.

소통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흔히 볼 수 있듯이 대화, 설득, 흥정을 통한 소통이 있다. 그런 소통에는 언어가 사용된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교환을 이성과의 대화 능력과 연결시키는데 이게 바로 설득의 방법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언어를 통한 소통은 소통의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비언어적(nonlinguistic) 소통이다. 이게 가격을 통한 소통인데 시장경제만이 가질 수 있는 소통방법이다.

비언어적 소통은 언어적 소통에 비해 여러 장점이 있다. 언어적 소통은 글로 쓰거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범위 내의 아는 사람들끼리 가능하다. 그런 소통은 불가능한 때가 있다.

익명의 사람과 글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암묵·초의식적 지식의 소통이 그렇다. 사람들이 가진 지식의 대부분은 암묵적이며 초의식적인 것이다. 의견, 아이디어, 취향, 선호, 상황과 관련된 지식의 대부분은 그런 종류에 속한다. 재주, 아이디어, 재화에 대한 호불호, 기업가 정신 등에 내장된 지식이 그렇다. 흥미롭게도 암묵적 지식은 말과 글로 전달하기 힘들지만 행동으로는 표현할 수 있다. 시장에서의 매매행위를 거쳐 가격구조에 반영되는 게 그런 지식이다. 시장에선 말보다 행동이 중요한 이유다. 따라서 사람들이 가격에 적응하는 건 가격을 통해 구현된 타인의 의견, 선호, 생각 등을 숙의·심의하고 학습한다는 걸 의미한다.

경이롭게도 가격을 통한 비언어적 소통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의 귤 수요자는 남미의 귤 수출업자와 가격을 통해 각자의 생각과 선호를 교환한다. 시장경제 질서가 자생적으로 형성되는 근본적인 이유도 가격구조가 거대한 소통체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흔히 가격구조를 ‘인센티브 기능’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가격구조의 소통기능은 인센티브 기능보다 근원적이다. 시장의 제1 덕목은 자원배분의 효율성이 아니라 지식소통의 탁월성이란 걸 직시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가격, 임금, 이자에 대한 통제는 개인이 가진 지식의 자유로운 소통을 왜곡한다.

그런데 시장의 소통은 가격구조를 통해서만이 아니라는 걸 주지할 필요가 있다. 정직, 공정, 신의성실, 직업윤리, 예의범절, 약속이행, 재산·명예·인격존중 등 사람들이 공동으로 지키는 수많은 도덕규칙도 소통기구다. 사람 사이에 경제적 관계가 형성되는 시장에는 이런 행동규범이 두텁게 쌓여 있다. 이런 행동규범에는 사람들이 장구한 역사적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과 지식이 축적돼 있다. 타인을 잘 모르고서도 우리는 도덕률 때문에 그들의 행동에 관한 보다 정확한 기대를 형성할 수 있고 그래서 낯모르는 사람과도 믿으면서 거래하고 분업과 협력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자본주의 오해와 진실] 신좌파는 틀렸다
도덕규칙을 지키는 행위도 일종의 소통행위다. 예를 들어 약속이행의 규칙은 계약대로 물건을 인도할 테니 돈을 미리 지급해도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도덕률은 가격구조와 똑같이 인간행동에 대한 기대의 형성을 가능케 하는 소통체계다. 이런 방식의 소통 덕분에 우리는 복잡한 세상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도덕규칙은 반드시 글이나 언어로 표현돼 있을 필요가 없다. 의식적일 필요도 없다. 대부분이 암묵·초의식적이다.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그런 준칙들을 지킨다. 따라서 시장은 소통부재라는 좌파의 주장은 틀렸다. 자유시장이 우리에게 번영을 안겨주는 것은 가격구조와 도덕규칙을 통한 방대한 지식의 소통 덕분이라는 걸 직시해야 한다.

민경국 <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