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허준영 최측근 비자금 수사…'정치권 진출 종잣돈' 의심
'단군 이래 최대 토목사업' 추진·실패 경위 등 규명 주목


검찰이 단군 이래 최대 토목사업으로 불리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 비리를 정조준함에 따라 수사 향배에 관심이 쏠린다.

사업 무산에 따른 갈등 양상이 사업 주체와 지역주민 간 민사 소송에 이어 형사 사건으로 비화한 모양새다.

단순 고발 사건을 들여다보던 검찰이 비자금 수사로 방향을 전환해 주목된다.

23일 검찰에 따르면 이번 수사는 작년 말 접수된 허준영(64) 전 코레일 사장 고발건이 발단이 됐다.

허 전 사장은 해당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총 1조원 규모의 배임·뇌물수수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검찰은 고발 사건을 수사하던 중 허 전 사장의 최측근 손모씨의 비자금 조성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심우정 부장검사)는 이날 손씨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용산개발사업을 추진했던 특수목적법인(SPC)인 용산역세권개발(AMC)에서도 수사 관련 증거를 확보했다.

폐기물업체 대표 직함을 가진 손씨는 해당 사업의 자금 흐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로 알려져있다.

사업 과정에서 일부 이권을 챙겼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용산 재개발 사업은 허 전 사장이 코레일 사장으로 재임한 2009∼2011년 큰 부침을 겪었다.

주관사가 삼성물산에서 롯데관광개발로 바뀐 것도 허 전 사장이 재임할 때다.

삼성물산은 2007년 사업을 주도하는 AMC 지분 45.1%를 확보해 주관사 지위를 따냈다.

하지만 2010년 추가 자금 조달 문제를 둘러싸고 코레일측과 갈등을 겪다 AMC 지분을 반납하고서 사업에서 손을 뗐고 이를 롯데관광개발이 넘겨받았다.

검찰은 특히 삼성물산이 손씨가 운영하는 업체에 폐기물 처리 업무의 하청 계약을 맺은 부분에 주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은 당시 2천900억원대 폐기물 처리 사업을 수주했고 손씨 업체에 약 127억원 규모의 일감을 줬다.

하청 업무는 허 전 사장 측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계좌추적 과정에서 허 전 사장과 손씨 사이에 회계장부에 잡히지 않는 수상한 자금이 오간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씨를 창구로 비자금을 조성한 게 아닌지 검찰은 의심하고 있다.

허 전 사장은 19대 총선 출마를 위해 2011년 12월 코레일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허 전 사장이 퇴임 직전인 그해 11월 자서전을 펴내는 등 내심 정치권 진출을 염두에 뒀던 점에 검찰은 주목하고 있다.

허 전 사장 측이 사업 과정에서 금품을 수수했는지도 수사 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다.

고발인 측은 허 전 사장이 건축설계비, 임직원 급여, 각종 금융비용 등을 과다 계상하는 수법으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공사 수주를 대가로 관련 업체들로부터 리베이트를 상납받았다는 의혹도 제기한 상태다.

실제 검찰은 고발장을 접수한 뒤 사실 관계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이와 관련한 수사 단서도 확보해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허 전 사장을 둘러싼 수상한 자금 흐름에 손씨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정황 증거도 일부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발인 측은 허 전 사장이 롯데관광개발에 사업의 주도권을 넘기고자 의도적으로 주관사 교체를 시도했다는 주장도 편다.

롯데관광개발이 자본금을 제때 납부할 수 있도록 코레일 토지를 담보를 제공하는 등 특혜를 줬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허 전 사장의 혐의 확인과 관계없이 검찰 수사를 통해 용산 재개발 사업의 추진 과정과 사업이 실패한 경위 등 진실의 얼개가 일부 드러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사업이 무산됐을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자금 경색, 사업 주도권을 둘러싼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 간의 갈등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지만 정확한 배경은 드러나지 않았다.

수사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 정·관계 인사가 비리에 연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외교관에서 경찰로 전직한 허 전 사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경찰청장까지 승승장구했으나 2005년 말 '시위 농민 사망 사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에는 당시 한나라당에 입당해 친이계 쪽과 교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졌다.

30조원대 규모의 국가적 사업을 일개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전권을 쥐고 추진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분석도 있다.

롯데관광개발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막내 여동생과 관계된 기업으로 범롯데가(家)로 분류된다.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lu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