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국정원 진술서와 검찰 신문조서 모두 증거능력 인정하기 어렵다"

북한 보위사령부에서 직파돼 국내외에서 간첩활동을 벌인 혐의로 구속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난 홍모(43)씨가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4부(최재형 부장판사)는 19일 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간첩·특수잠입 혐의로 구속기소된 홍씨의 항소심에서 "제출된 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국가정보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홍씨가 혐의를 자백하는 내용을 쓴 진술서와 검찰 조사에서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 등 핵심 증거들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국정원 합신센터 조사 역시 수사과정으로 볼 때 형사소송법 규정에 따라 피고인이 재판에서 그 내용을 인정하는 경우에 한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며 "피고인이 원심에서 그 내용을 부인했기 때문에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는 검찰이 형소법에 따라 홍씨에게 고지해야 할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조력권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채 조사한 내용이어서 적법한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봤다.

앞서 1심에서 같은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자 검찰은 이례적으로 언론 브리핑을 열어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조력권 등을 충분히 보장했다고 반박했고 항소심 재판에서도 중점적으로 다퉜지만,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기소된 이후 홍씨가 법원에 혐의를 자백하는 듯한 내용으로 제출한 반성문도 납치 임무에 실패한 뒤 간첩 임무를 받고 잠입했다는 개략적 내용이 기재돼 있기는 하지만, 탐지·수집하려던 국가기밀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지령 내용이 무엇인지 등이 충분히 쓰여 있지 않아 이것만으로 유죄 사실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홍씨는 2012년 5월 보위부 공작원으로 선발돼 이듬해 6월 상부의 지령으로 북한·중국의 접경지대에서 탈북 브로커를 유인·납치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두 달 뒤 탈북자로 신분을 가장해 국내에 잠입한 혐의로 2014년 3월 구속 기소됐다.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mi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