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인 듯…드라마인 듯 과학사극 '장영실'이 떴다
“너는 귀한 아이다. 귀한 아이니 이 서책을 주는 것이다.” “명(明)으로 가서 단 하루만이라도 사람으로 살아다오. 그게 내 소망이다.”

15세기 천재 과학자 장영실의 일대기를 그린 KBS 대하드라마 ‘장영실’(극본 이명희·마창준, 연출 김영조)은 이렇게 애틋한 부자 관계를 보여주며 막을 연다. 양반과 관기 사이에서 태어난 장영실은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관노비가 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다. 그러나 아버지 장성휘(김명수 분)는 여느 사대부와 다르다. 어린 장영실(정윤석 분)의 재능을 높이 사고 관비로서의 삶을 안타까워한다. 또 청년이 된 장영실(송일국 분)이 명나라로 도망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별자리의 위치를 파악하는 혼상(渾象)을 만들 수 있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다.

다큐인 듯…드라마인 듯 과학사극 '장영실'이 떴다
위인전처럼 뻔한 서사지만 드라마는 이를 색다르게 풀어간다. 장영실 부자의 별자리 관측과 학문적인 토론을 그래픽 애니메이션으로 친절하게 설명한다. 필요한 경우 배우가 나오지 않는 전체 화면으로 그래픽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며 원리를 이해시킨다. 장영실이 혼상을 설계하고 만드는 과정은 소품 하나하나를 잡아 구동시키는 과정까지 자세히 보여준다. 과학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이뿐만 아니다. 극 말미에는 드라마에서 다룬 천문관측 기구와 인물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역사적 현장도 소개한다. 드라마를 보고 아이들과 박물관을 찾았다는 시청자의 글도 많다. 교육적인 드라마라고 해서 음모와 술수, 화려한 액션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장희제(이지훈 분)가 고려 잔당들과 태종의 이중첩자 역할을 하는 장면이나 명나라의 기득권 싸움에 휘말렸다가 탈출하는 장면들은 여느 정통 사극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드라마에서 자격루(자동 물시계)와 천문대 등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관심이 쏠렸다. 10회에 등장한 장영실의 수운의상대(11세기 중국에서 만든 자동물시계) 복원 장면은 신분과 국가, 이해관계를 초월한 과학자들의 협업을 보여준 명장면이었다. 깨달음을 얻은 장영실이 역경을 딛고 어떻게 자격루를 완성할 것인가. 김영조 PD는 “기대해도 좋다”고 공언했다. 이슬람에서 12세기부터 사용했다는 해시계와 천문관측기까지 고증해 보여줬으니, 징과 북을 치는 작은 인형들이 시보를 알리는 자격루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커진다.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장영실과 대립하면서 협업하는 장희제의 존재와 신분을 넘어선 사랑으로 발전할 상대인 소현옹주(박선영 분)와의 관계는 드라마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장영실의 멘토이자 세종의 충신인 조선 초기 과학자 이천에 대한 재평가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주영 < 방송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