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대부분의 직업이 위기를 맞았다는 현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와 오피스의 등장은 생산성 혁신과 더불어 직업에 막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기억해보자. 과거 프레젠테이션의 모습을. 웬만한 괘도라도 만들려면 전지(全紙)와 T자, 매직펜…. 준비해야 할 것이 어디 한두 가지였던가. 투입된 맨아워는 또 얼마였던지. OHP(오버헤드프로젝터)가 등장해 그 노고를 덜어주는가 싶더니 1990년대 초 PC와 함께 대중을 파고든 오피스 파워포인트는 노고는 물론 수많은 직업인의 일자리까지 대체하고 말았다.

빌 게이츠의 막대한 부는 생산성을 혁신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 대가로 봐야 정상이지만 반대로 기존 일자리와 직업을 파괴한 결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게이츠가 국내 기업인이라면 ‘떼법’에 따라 실업유발부담금이나 직업안정기금을 내야 할지 모른다.

기술의 진보가 아무리 많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 한들 그 기술 탓에 자신이 직업을 잃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새로운 직업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그건 일자리의 파괴와 다르지 않다. 꼭 한 달 뒤다. 이세돌이 구글의 슈퍼컴퓨터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패했다고 하자. 기계에 진 인간의 바둑이 뭐가 재미있겠는가. 프로바둑기사라는 직업이 멀쩡할 리 없다.

걱정 속에서도 직업을 파괴하는 기술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며칠 전 슈퍼볼을 앞두고 MS가 공개한 새로운 스포츠 중계 방식은 감탄스러울 정도다. 거실에 축소된 슈퍼볼 경기장이 홀로그램으로 구현되고, 그 안을 스타플레이어들이 뛰어다닌다. ‘홀로렌즈’라는 기술이다. 인간과 컴퓨터와의 접촉을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변화시킬 증강현실 기술이다. 모든 정보가 홀로그램으로 구현된다. 게임이나 TV 중계 같은 엔터테인먼트는 기본이다. MS는 모든 분야에서 1990년대 일으킨 PC 대중화와 같은 변화를 예견하고 있다. 수많은 직업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공개적으로 전문가들의 직업을 빼앗겠다고 나선 것은 IBM의 ‘왓슨’이다. 자연어로도 스스로 학습이 가능한 왓슨은 이미 폭넓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압권은 의료분야다. 방대한 의료 지식을 수집하고 분석해 가장 좋은 치료법을 단숨에 알려준다. 몇 시간 전 임상을 끝낸 기술과 신약까지 말이다. 의사들의 설 땅이 좁아지고 있다. 변호사들은 왓슨의 법률서비스시장 진입을 걱정하고 있다. 왓슨은 이미 IBM에서 성장성이 가장 높은 사업이 됐다.

첨단 기술에 직업을 빼앗기면 막노동이나 하면 그뿐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다. 유튜브에 들어가 ‘최신형 벌목기계’를 검색해보라. 포클레인을 닮은 장비가 나무를 움켜쥔 뒤 베어 내고, 일정한 크기로 다듬어 차곡차곡 쌓는다. 수백 명의 벌목공이 온종일 할 일을 단숨에 끝낸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70%가 농촌 인구였던 나라다. 산업화 이후 50년간 얼마나 많은 직업이 태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는가. 가장 극적인 변화는 1990년대 말이었다. 기업들은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외환위기만을 탓했지만 사실은 구시대의 일자리와 직업의 폐기가 더 큰 이유였을 것이다. 사무직은 물론 생산 현장도 컴퓨터 없이는 돌아가지 않던 시기다. 그 많던 주산부기학원이 사라진 게 그즈음이다.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졌지만, 기존 일자리와 직업은 무한정 사라졌다. 다행스러운 것은 정보기술(IT) 벤처붐이 일자리와 직업의 돌파구를 마련해줬다는 것이다. 위기에서 조기에 탈출할 수 있던 계기였다.

그러면 지금 일자리의 위기는 어디서 돌파구를 찾을 것인가. 구직자들은 트렌드를 읽지 못해 기존 직업에서만 일자리를 찾는다. 청년실업의 원인이다. 정부는 안전판 없이 창업만을 강조한다. 젊은이들이 리스크만 있는 창업에 뛰어들겠는가. 100세 시대 중장년층의 생산성 제고는 개념조차 없다. 대량 실업은 기술의 발전 탓이 아니다. 비전과 전략을 상실한 사회가 그것을 부추길 뿐이다.

직업의 사이클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짧아지고 있다. 지금 초등생 가운데 65%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일자리와 직업의 대변혁기는 그렇게 다가오고 있는데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