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피해현장정리사업…'광주 일가족 살해사건' 첫 시행
수사부터 청소, 심리·경제지원까지…피해자 지원 '박차'


지난 24일 오전 10시께 경기 광주시의 한 아파트에서는 경찰관들이 피묻은 이불과 가구 등 집기를 포대에 담아 치우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경찰관들이 사다리차까지 동원, 청소에 나선 이곳은 불과 사흘 전 40대 가장이 부인과 두 자녀 등 일가족 3명을 살해한 뒤 투신한 강력범죄 현장이다.

21일 오전 9시 5분께 이 아파트 18층에서 A(48)씨가 부인(42)과 아들(18), 딸(11) 등 3명을 둔기로 때려 살해하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는 투신 직전 112로 전화를 걸어 "부인을 망치로 때렸고 아이 2명도 살해했다"며 "불면증 때문에 아이들을 살해했다"고 말한 것으로 경찰은 전했다.

사건이 발생한 집 내부는 참혹하기 그지 없었다.

거실에는 종이봉투와 앨범, 가계부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A씨가 휘두른 둔기에 맞아 숨진 부인이 쓰러져 있던 부엌은 곳곳에 핏자국이 선명했다.

피해자인 딸이 잠들어 안고 있던 곰인형, 인기 캐릭터인 뽀로로가 그려진 이불과 아들이 베던 베개에는 피가 흥건했고, 유리문이 파손된 상태로 방치돼 끔찍했던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차마 눈뜨고 바라보기 힘든 강력범죄 현장은 범죄 트라우마가 있는 피해자가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공간이다.

경찰은 올해 '강력범죄 피해현장정리' 사업을 도입했다.

범죄 현장을 깨끗이 청소해 피해자의 일상 복귀와 피해 회복을 돕는다는 취지다.

지난해까지 법무부가 범죄피해자 보호기금을 통해 지원하던 강력범죄 피해현장정리 사업은 각종 심의를 거쳐야 하는 탓에 절차가 복잡했다.

경찰청은 관할 경찰서 심사를 통한 발빠른 지원을 위해 법무부로부터 2억8천500만원의 예산을 이관했다.

최근 3년간 전국 강력범죄(살인·강도·강간·방화 등) 발생 비율을 기준으로 경기지방경찰청(22%)에는 6천250만원이 배정됐다.

이에 따라 경기청은 첫 지원대상으로 '광주 일가족 살해사건' 현장을 선정했다.

범죄수법이 워낙 잔인했던 탓에 피해자, 가해자 유족들이 현장을 정리할 엄두도 내지 못했고, 범행 후 피의자가 투신한 모습을 아파트 주민 다수가 목격하는 바람에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문제는 지원 대상이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로 인해 피해자의 주거 등이 훼손됐거나 혈흔, 악취 등 오염이 발생한 경우'로 한정된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은 범죄 현장이 피해자의 주거지이자 가해자의 주거지로, 지침상 지원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하지만 경기 광주경찰서는 서장 특별 승인을 통해 지원을 최종 결정했다.

강도희 서장을 비롯해 피해자 전담 경찰관 배재환 경사, 사건을 맡은 최주환 강력 1팀장 등 경찰관 5명, 청소업체 직원 2명 등은 이날 오후 6시까지 현장을 청소했다.

유족 요청에 따라 승합차 1대, 1.5t 트럭 1대 등 차량 2대에 가득찬 포대 수십 자루 분량의 집기류 등은 모두 폐기했다.

경찰 관계자는 "한가족인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숨진 안타까운 사건이라 청소를 하는 동안 가슴이 미어졌다"며 "상상도 하지 못할 고통을 겪은 유족, 끔찍한 사고에 충격을 받은 아파트 주민들을 조금이나마 돕고자 현장 정리에 나섰고, 모두 고맙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경찰은 유족들을 대상으로 위기개입 상담 등 심리지원, 유족구조금 등 경제지원을 병행할 계획이다.

(광주연합뉴스) 강영훈 기자 k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