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집으로” > 항공기 운항 중단으로 제주공항에 발이 묶였던 중국인 관광객들이 25일 중국행 항공권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 “드디어 집으로” > 항공기 운항 중단으로 제주공항에 발이 묶였던 중국인 관광객들이 25일 중국행 항공권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폭설과 강풍으로 제주 지역 항공기 운항이 중단된 지 사흘째인 25일. 제주국제공항 대합실 곳곳은 비행기를 기다리는 2500여명의 여행객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신문지나 수하물 포장용 박스를 깔고 ‘난민’처럼 쪽잠을 자는 사람도 수두룩했다. 일부 저비용항공사 카운터 근처에서는 고성이 잦았다. 대기표조차 받지 못한 승객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았다. 공항이 정상화되면 어떤 순서로 비행기를 타게 되는지에 대한 안내도 없었다.

◆‘1주일 대기’ 통보에 절망

['제주 대란' 부른 매뉴얼 미비] "공항서 기다려라…1주일 이상 걸릴 수도…" 혼란 키운 저비용항공
티웨이항공은 지난 23일 공항이 폐쇄되자 여행객들에게 ‘공항이 정상화되면 줄을 선 순서대로 태우겠다’고 발표했다. 티웨이의 이런 조치에 상당수 탑승객은 공항 내에서 이틀간 노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백명이 여행가방을 가득 실은 카트 채로 줄을 서면서 공항 내 대합실은 거의 마비 상태가 됐다. 제주공항공사 직원들까지 나서서 티웨이항공 측에 신속한 조치를 요청할 정도였다. 뒤늦게 이날 오전 6시30분이 돼서야 대기번호표 배부를 시작했지만 번호표를 받으려는 사람과 발권을 하려는 사람들이 섞이면서 혼란은 가중됐다. “1주일 이상 대기하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는 티웨이항공 측 설명이 나오자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특별 비행편이 추가되느냐는 질문에도 “아직 모른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사흘째 공항에서 노숙을 한 김모씨(52)는 “오늘 갈지, 내일 갈지, 모레 갈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기다리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공항 밖에서는 ‘숙박대란’도 벌어졌다. 회사 동료와 세미나 참석을 위해 제주에 왔다가 발이 묶였다는 임모씨(42)는 “제주 시내에서 숙박 시설을 찾지 못해 심야에 눈길을 세 시간 이상 달려 서귀포까지 가서 겨우 호텔방을 잡았다”고 했다.

바가지 상혼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정모씨(33)는 “렌터카를 연장하려고 하니 가격이 두 배 이상 올랐고, 무료로 주던 스노체인도 2만원의 대여료를 달라고 하더라”며 “폭설을 대목으로 이용하는 건 너무 한 거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저비용항공사 한계 드러내

이번 제주공항 사태에서 대부분의 저비용항공사는 체계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 결항 승객들에게 안내 문자조차 제대로 보내지 않았다. 현재 상황을 전화로 물어볼 수 있는 창구도 없었다. 저비용항공사의 한 승객은 “본사에 아무리 전화를 해도 통화가 되지 않았다”며 “제주공항에서도 다른 연락처가 없고 무조건 창구로 직접 가서 물어보라고만 했다”고 했다. 일부 저비용항공사들의 서툰 대응이 제주공항의 혼란을 더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별기 투입 등 후속 조치에서도 한계를 보였다. 저비용항공사 관계자는 “대형항공사와 달리 항공기 여력이 없기 때문에 다른 노선을 운항하는 항공기를 제주로 돌려야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고 했다. 항공 전문가들은 “기존 제주 노선만으로 결항 승객들을 운송하려면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항공업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저비용항공사들의 위기 대처 매뉴얼 등을 점검해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저비용항공사들의 서비스가 대형 항공사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넘어가기엔 이번에 너무 많은 허점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제주=임원기/고재연/서욱진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