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화개첩' 등 국보·보물 다수…도굴·훼손도 120여건
'세탁'후 버젓이 시장으로…유통 경위 복잡해 범인 잡기 '난항'

경매에 나올 예정이었다가 장물로 확인된 삼국유사 권2 '기이편'은 17년 전 원 소장자의 집에서 도둑맞은 물건이다.

삼국유사처럼 지난 30여년간 도난된 문화재는 700건이 넘는다.

대부분 문화재는 행방이 묘연하지만, 오랜 시간 여러 차례 세탁을 거친 후 고서적·고미술 시장이나 경매 시장에 버젓이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왕왕 발생하고 있다.

21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1985년 이후 현재까지 문화재 도난 신고 건수는 모두 705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보존가치가 높은 '지정 문화재'가 163건에 달한다.

옛 그림·조각품·공예품이나 도자기류, 고문서류, 민속자료, 외국문화재 등과 같은 '비지정 문화재'는 552건이다.

반면, 도로 찾은 문화재는 전체의 29.6%가량인 209건에 그쳤다.

도난 문화재 10건 중 7건은 아직도 행방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문화재급별 회수율을 보면 지정 문화재는 40.5%, 비지정 문화재는 26.1%로 나타났다.

도굴(85건)이나 훼손(36건) 사례도 모두 121건이 보고됐다.

지정 문화재가 50건, 비지정 문화재가 71건이다.

문화재청은 홈페이지에 도난 문화재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국보 제238호 '소원화개첩', 보물 제7호 경기도 여주 상교리 '원종대사혜진탑' 상륜부, 보물 제669호 경상북도 상주 금혼리 충의사유물전시관 정기룡장군유물 중 '유서' 1점 등 국보·보물급 문화재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문화재 도난 신고가 들어오면 문화재청은 경찰청에 통보해 범인 검거 협조를 요청하고 지방자치단체와 박물관에도 통보한다.

또 세관과 문화재감정관실에 알려 국외유출을 막는다.

문화재 도난은 2001년 30억원 상당의 문화재를 훔친 전문절도단이 적발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당시 서모 씨 등을 주축으로 한 절도단이 훔친 장물은 보물 604호 '장말손 적계유물상훈교서', 보물 881호 장말손의 패도'를 비롯해 30억원 상당의 문화재 35점에 달했다.

이들이 훔친 문화재는 이른바 '세탁'을 거친 뒤 박물관 등으로 유통됐다.

2006년에는 1980년 도난당한 18세기 8폭짜리 불화 '팔상도'의 2폭이 서울옥션 경매 출품 예정작으로 발표됐다가 도난품이라는 소문이 퍼져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번에 논란이 된 삼국유사 역시 1999년 원 소장자의 자택에서 도둑맞은 뒤 17년간 행방을 알 수 없다가 이번에 경매에 출품된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원 소장자 가족의 신고로 장물임이 확인됐다.

하지만 이렇게 찾아낸 도난품보다 행방조차 모르는 도난품이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다.

절도범부터 구매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워낙 복잡하고 은밀한데다가 나중에 도난품임이 확인되더라도 최종 구매자가 장물인지 알고 샀는지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도난된 물건이 세상에 다시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공소시효가 끝나버리는 것도 문제다.

문화재 절취·은닉죄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예컨대 국보인 소원화개첩은 2001년 소장자의 집에서 도난당한 후 15년이 흐른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소원화개첩은 조선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정권 다툼에 말려들어 35세 젊은 나이에 둘째 형 수양대군(훗날 세조)에게 죽임을 당하기 전 쓴 작품이다.

2010년 경찰은 이 작품을 도난 문화재로는 처음으로 인터폴을 통해 국제수배했다.

한 경매시장 관계자는 "민간에서는 경매시장에 나온 물건이 도난품인지 확인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도난 문화재 논란이 발생하면 경매시장이 위축돼 우리도 답답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e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