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넘기기' 누리과정 예산 다툼에 보육 현장 혼란

"빚이라도 내서 월급 주려고 백방으로 뛰고 있는데 이번에는 어떻게든 막는다 해도 다음 달은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언뜻 부도 위기에 몰린 영세 중소업체 사장의 말 같지만, 미취학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광주의 남구의 한 유치원 원장의 요즘 심경이다.

25일이 유치원 교사들의 월급날인데도 아직 뚜렷한 대책이 나오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정상적이라면 지난 15일을 전후해 광주시교육청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했어야 했지만 급여일이 코앞인데도 소식이 없다.

교육청에서 지원되는 누리과정 예산의 대부분을 인건비로 쓰고 있어 교육청 지원이 없으면 교사 급여 지급은 불가능하다.

이 유치원 원장은 "아침에 출근해 교사들 얼굴 보는 것도 부담이 갈 정도"라며 "한두 달만 버티면 되겠지 싶어 아는 곳에 도움을 청했지만 그 다음은 능력 밖"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학부모 동요가 덜한 이 유치원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북구의 다른 유치원은 어린이들을 유치원에 못 보내겠다며 누리과정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아이를 집에 두겠다는 학부모 문의가 이어졌다.

그동안 학부모들은 유치원에 납부하는 자부담 교육비 10만원 가량만 내면 됐지만, 누리과정 지원비가 나오지 않으면 학부모 부담이 30만~40만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 유치원 원장은 "교육비 부담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득하지만 교육청에서 지원비가 안나오고 원아들도 빠져 나가면 유치원은 문을 닫아야 한다"고 괴로운 심경을 털어놨다.

유치원총연합회도 정부와 교육청의 떠넘기기식 태도에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연합회 광주지회 관계자는 "교육현장의 혼란을 해결해야 할 정부와 교육청이 오히려 혼란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언제까지 이렇게 서로 무책임하게 상대방에게만 책임을 돌릴 것인지 정말 답답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치원 상황을 지켜보는 어린이집들은 그나마 다음달까지 시간 여유가 있으나 해결책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어린이집 보육은 정부 책임'이라는 교육청 태도로 볼때 오히려 어린이집 예산 확보가 더 부정적이다.

더욱이 누리과정 예산 논란으로 어린이집 기피현상이 발생해 정원을 채우지 못한 곳이 속출하면서 교사 인건비는 물론 운영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곳이 많아졌다고 어린이집연합회는 전했다.

광주어린이집연합회 관계자는 "유치원 예산은 시의회에서 통과만 되면 언제라도 집행이 가능하지만 어린이집 예산은 아예 없는 상태여서 걱정이 태산이다"고 불안감을 드러냈다.

광주시교육청은 올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701억원을 한푼도 반영하지 않았다.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은 598억원을 책정했지만 시의회가 어린이집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전액 삭감한 상태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청 혼자 누리과정을 감당하기는 불가능하다"며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남도교육청은 최근 정부지원을 전제로 어린이집 예산을 편성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정부가 목적예비비로 228억원을 지원하면 일단 3개월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에 반영해 일단 급한 불부터 끄기로 했다.

전액 삭감됐던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 483억원도 도의회에 추경심의를 요청할 계획이다.

한편 이날 오후 부산에서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 총회가 열릴 예정이고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져 그 결과가 주목된다.

누리과정 예산 편성에 대해 전국 교육감들이 어떤 합의점을 도출할지에 지역 교육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여운창 기자 b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