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지난 20세기 세계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인 6.25전쟁의 흔적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세계에서 보기 드문 역동성을 가진 독특한 도시다. 전쟁유산인 산복도로와 역동적인 발전의 상징인 센텀시티의 공존은 부산의 흥미로운 두 얼굴이다. 이러한 부산의 다양한 모습과 속살을 드러낸 연구가 주목을 끌고 있다.

부산발전연구원(원장 강성철) 부산학연구센터는 20일 부산의 역사적 지층을 파헤치고, 숨어있는 도시의 이면을 소개하는 연구논총『피란수도 부산의 문화예술』과 시민연구『부산을 알다』를 냈다. 『부산을 알다』는 다양한 외국어로 번역해 외국인들에게도 널리 알릴 예정이다.

O…피란수도 부산의 문화예술
6.25전쟁이라는 세계 2차 대전 이후 세계 최대 규모의 전쟁 속에서도 부산은 삶을 예술적으로 승화하려는 치열한 노력이 있었다. 전쟁은 물리적 파괴를 가져왔지만 영혼의 파멸을 의미하지 않았다. 전쟁이라는 폐허 속에서 꽃피운 문화예술은 현재의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거대한 뿌리를 이루고 있다.

『피란수도 부산의 문화예술』은 피란수도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피란수도 부산에서 피란민과 거주민들이 형성했던 부산 문화예술의 풍경을 정리하고 있다. 문학, 미술, 음악, 사진, 연극, 영화의 여섯 장르로 구성돼 있다. 대표집필자인 이현주 박사(문화재청 감정위원)는 이 작업의 의미에 대해 “흩어져 있던 기록과 사진들을 수집하고 채록하며 피란수도 문화예술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뜻 깊은 작업이었다”고 평가한다.

이 책은 피란수도 문화예술은 전쟁으로 유입된 외지인들에 의한 타의적이었지만 자아를 발견하는 중요한 계기였다고 규정한다. 나아가 혼성적인 문화교류 현상의 극대화를 통해 문화적 다양성을 확대했다고 본다. 정체성과 국제성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킨 계기였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의식 형성이 우리나라 근현대 문화예술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당시의 예술활동과 자료들을 집대성함으로써 피란수도 부산의 문화예술의 정체성과 그 이후의 영향력을 규명코자 한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작업은 최근 부산시가 추진코자 하는 피란수도 건축·문화자산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광범위한 기초작업이라는 데 또 다른 의미가 있다.

O…부산을 알다
손에 들고 다니며 부산을 알고 즐길 수 있도록 핸드북 사이즈로 제작된『부산을 알다』는 더욱 의미가 있다. 우리는 부산을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 우리는 부산을 외국인에게 얼마나 알려 줄 수 있을까? 이 책은 외국인을 위해 부산의 속살을 드러낼 목적으로 준비됐다. 속살을 드러낸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과 ‘뒤에 두었던 것’을 모두 보여준다는 의미다. 부산을 알리지만 맛 집이나 교통편이 수록돼 있는 단순한 가이드북이 아닌 ‘진짜 부산’을 전하려고 한다.

이 책은 크게 네 가지 영역으로 구성됐다. 첫째 ‘도시와 공간의 재발견’은 부산이 가진 물리적 환경의 수월성과 이에 얽힌 12곳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두 번째 ‘넘실대는 문화예술의 물결’은 부산 사람들에 내재된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와 이야기를 노래방문화부터 대안문화공간까지 13가지 주제로 조명하고 있다. 세 번째 ‘해양도시의 역사와 생명력’은 고대시대부터 전근대기를 거쳐 근대와 현대에 이르는 부산 역사의 흥미로운 순간과 사건 11가지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 ‘꿈틀대는 일상의 활력’은 부산의 흥미로운 먹거리와 놀거리 그리고 살거리에 대한 11가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연구책임을 맡은 이승욱 대표(플랜비)는 “이 책에 담긴 47가지 이야기들이 부산시민들과 부산에 관심 있는 국민과 외국인 독자들에게 부산다움을 전달하는 매체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도시마다 역사적 자원에 대한 재조명과 도시 정체성을 밝히려는 노력이 치열하다. 김형균 부산학연구센터장은 “향후 도시경쟁은 도시 정체성과 역사적 가치를 어떻게 문화적으로 승화하느냐의 치열한 경쟁이기 때문에, 이번 연구 작업은 부산의 진정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