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하반기 국내 굴지의 전자회사에 입사한 박모씨(28)의 새해 목표는 이직이다. ‘바늘구멍’으로 불리는 취업문을 뚫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왔다. 그러나 입사하자마자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다.

박씨는 작년 말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최근 부서에 배치됐다. 잔뜩 부푼 마음으로 시작한 회사 생활은 기대와 딴판이었다. 마케팅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과 달리 인사팀에 배치됐다. 조직이 원하는 바가 있으니 신입사원이 부서 배치를 두고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입사 후 뭔가를 제안하기만 하면 “너무 튀지 말라”며 선배들이 눈치를 줬다. 업무가 끝나면 회식 등 또 다른 사회생활이 시작됐다. 고민 끝에 그는 ‘취업 반수생’이 되기로 했다.

박씨와 같은 신입사원들은 주변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신입사원 10명 중 3명은 입사 직후 회사를 떠난다는 교육부의 조사 결과(2014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건강보험 및 국세 데이터베이스 연계 취업통계)도 있다. 취업한 지 1년이 지난 뒤 취업 당시의 상태를 유지한 비율은 전체의 73.1%였다.

‘배가 덜 고파서 그렇다’, ‘요즘 애들은 근성이 없다’며 이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선배도 많다. 그러나 이들의 고민은 사뭇 진지하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힘들어하거나 생각지도 못한 문화의 벽에 부딪히면서 쌓인 고민이다.
[金과장 & 李대리] 새내기 직장인들의 애환
줄줄이 떠나는 선배들

작년 초부터 국내 한 백화점에서 일하는 장모씨(29)는 요즘 ‘출근하는 게 스트레스’다. 작년 하반기부터 주변의 40대 중반 과장과 차장들이 회사를 계속 떠나는 모습을 보고 있어서다.

장씨가 부서에 배치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차장이 장씨 옆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몇 주 뒤 알게 됐다. 결국 이 차장은 한 달을 못 버티고 명예퇴직이란 이름으로 회사를 나갔다. 장씨는 “‘우리 회사가 정년이 짧다’는 얘기는 입사 직후 얼핏 들었지만 실제로 그 과정을 지켜보니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퇴직을 권유한 15년 이상 과·차장들이 이를 거부하면 창고와 같은 회사 내 외진 사무실에서 일하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장씨는 올 들어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정년까지 일하고 싶어서다.

적응 안 되는 회식 문화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에 다니는 장모씨(27)는 입사 후 얼마 안 돼 했던 부서 첫 회식을 잊을 수가 없다. 한 과장이 “우리 부서에 온 걸 축하한다”며 맥주를 채운 유리잔 30개를 일렬로 세웠다. 그 위에 소주잔들을 올려놓고 툭 밀었다. 소주잔들은 도미노처럼 퐁당퐁당 빠졌다.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장씨는 이런 모습을 처음 봤다. 부서 내 고참 차장은 병을 흔든 뒤 뿜어져 나오는 맥주를 잔에 따르는 일명 ‘샤워주’를 제조했다. 누가 더 화려하게 폭탄주를 만드는지 경연대회를 보는 듯했다. “충격이었습니다. 한 선배는 ‘앞으로 거의 매일 볼 모습이니 너무 놀라지 말라’고 얘기해줬지만 대학 시절에는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거든요.”

정부 부처에서 일하게 된 정모 사무관(28)도 최근 회식 때 노래방에 가서 깜짝 놀랐다. 노래가 시작되자 평소 점잖던 한 선배가 “과장님, 90점 넘는 데 한 장”이라며 1만원짜리 지폐에 침을 발라 모니터에 붙였다.

90점을 못 넘자 모니터에는 또 다른 1만원이 붙었다. 그렇게 지폐들이 화면을 뒤덮었다. 소속 부서 국장이 5만원짜리 지폐를 붙이자 선배들의 환호는 절정에 달했다. 이 돈은 고스란히 3차 비용으로 쓰였다.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한 대학 동기들에게 ‘깜짝 놀랐다’고 말하니, 동기들이 ‘뭘 그런 걸 갖고 놀라느냐’고 핀잔을 주더군요. 고시 공부하면서 공직 생활이 이럴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극복하기 힘들었던 지방 근무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한 금융 공기업에 다니던 박모씨(28)는 입사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작년 말 회사를 그만뒀다. 부모의 반대가 컸지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한 뒤 생긴 변화 때문이었다. 그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했다. 평생 서울에서만 살았던 터여서 지방 근무가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는 만큼 지방 근무쯤이야 얼마든 적응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런데 지방 생활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퇴근 후 별다른 할 일이 없는 상사들의 잦은 호출이 그를 가장 힘들게 했다. 여자친구의 불만도 커졌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원거리 커플’이 된 뒤 다툼이 잦아졌다. 결국 “이렇게는 못 산다”는 여자친구의 결별 통보가 퇴사의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박씨는 다시 취업준비생으로 돌아갔다. 서울에 있는 금융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필기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여자 선배들이 너무 어려워요.”

작년 하반기 한 홈쇼핑 회사에 입사한 정모씨(28). 그는 육군 장교 전형을 통해 취업에 성공했다. 정씨의 똑 부러지고 남자다운 모습에 면접관들은 다들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밝게 빛날 줄만 알았던 그의 회사 생활은 입사하자마자 꼬이기 시작했다. 여성 비율이 80% 이상인 부서에 배치받은 게 문제가 됐다. 상당수 여자 선배가 군인 출신 특유의 ‘다·나·까’로 끝나는 말투를 부담스러워했다.

커피 심부름도 만만치 않았다. 칼 같은 더치페이 문화로 인해 열 장 이상의 신용카드를 선배들로부터 받아 하나하나 주문해야 했다. “카페라테 샷은 하나 추가해주고, 우유는 두유로 바꿔줘.” 시시콜콜한 주문을 하는 선배도 있었다.

주문하지 않은 커피를 들고 갔다가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선배들의 주문을 포스트잇에 적어 각각의 신용카드에 붙이는 등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겼지만 ‘내가 이러려고 회사에 들어왔나’ 하는 회의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이현동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