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장년층 위해 파견 확대해야" vs "비정규직 급증 불러올 것"
전문가들 "절충해 합리적인 대안 마련해야"…정부, 개정안 보완 검토


박근혜 대통령의 13일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으로 파견법이 노동개혁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일자리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차선책으로 노동계에서 반대하고 있는 기간제법과 파견법 중에서 기간제법은 중장기적으로 검토하는 대신, 파견법은 받아들여 달라"고 말했다.

파견법은 재취업이 어려운 중장년에게 일자리 기회를 확대해 주는 '중장년 일자리법'이며, 어려운 중소기업을 돕는 법이라는 것이 박 대통령의 생각이다.

박 대통령의 호소에도 파견법의 국회 통과에는 난항이 예상된다.

경영계는 기업 경쟁력 강화와 중소기업 구인난 해소 등을 위해 파견 허용업종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노동계는 비정규직 급증을 우려해 파견법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노동계와 정부의 주장 모두 타당한 면이 있는 만큼, 양측의 주장을 절충해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할 것을 제언했다.

◇ "파견 확대로 생산유연성 높이고, 中企 구인난 해소해야"
정부·여당이 내놓은 파견법 개정안은 55세 이상 고령자와 근로소득 상위 25%(2015년 기준 5천600만원) 전문직 등으로 파견 허용업무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형·주조·용접·소성가공·표면처리·열처리 등 '뿌리산업'의 파견 허용도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현재 '파견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은 32개 업종, 197개 직종에만 파견을 허용한다.

허용기간은 최대 2년, 계약 갱신횟수는 1회로 제한된다.

파견이 허용되는 업종은 컴퓨터·행정·경영·재정·특허·영화·연극·방송 분야 전문가, 사무지원·음식조리·건물청소·배달·운반 분야 종사자, 번역·통역가, 창작·공연예술가, 전기공학·통신 기술공 등이다.

경영계에서는 제조업 생산공정에 파견을 허용하자고 주장한다.

생산공정의 파견이 허용되지 않다 보니 불법 파견이라고 비판받는 사내하도급이 만연해, 그 적법성 여부를 둘러싼 생산현장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파견근로와 사내하도급은 외부 하청업체에 일을 맡긴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근로자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내리느냐 여부에 따라 갈린다.

파견근로자는 직접적인 업무지시를 받을 수 있지만, 사내하도급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 제조업 파견이 허용되지 않았으므로, 제조업체가 생산공정에서 일하는 사내하도급 근로자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내리면 이는 '불법 파견'이 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형준 노동정책본부장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은 제조업 생산공정의 파견근로를 허용해 경기 변동에 대처하는 생산의 유연성을 높이고 있다"며 "이러한 글로벌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면 국내 제조업체는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파견 확대를 원하는 목소리는 중소기업계와 중장년층에서도 나온다.

중소기업중앙회, 뿌리산업협회 등 중소기업·소상공인 관련단체에서는 최근 수년간 지속적으로 파견 확대를 요구해왔다.

안산공단에서 도금업체를 운영하는 한 사업주는 "주문기업의 요구에 따라 생산물량이 급격히 변화해 필요인력을 예측할 수가 없다"며 "인력 채용이 너무 어려워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현재의 파견 허용업무는 너무 좁다"고 비판했다.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한 김모(54)씨는 "연봉 액수보다는 연륜과 경험을 활용해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며 "파견을 확대하면 기업 입장에서도 우수한 인재를 채용하기 쉽고, 근로자 입장에서도 자녀들의 정규직 일자리를 대체하지 않으면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시너지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 "지금도 불법파견 천지…파견 확대보다 정규직 전환 유도해야"
노동계는 박 대통령의 '기간제법 대신 파견법' 요구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불법 파견과 사내하도급을 더욱 강력하게 규제해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지는 못할망정, 파견이 허용되는 업종을 대폭 확대하면 노동개혁의 주된 목표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극화 해소'는 결코 이룰 수 없다는 얘기다.

대기업에서도 파견과 사내하도급이 만연한 상황에서, 파견 허용업종까지 확대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노동계는 주장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근로자 300인 이상 대기업 근로자 459만명 중 파견, 하도급 등 간접고용 근로자는 92만명(20%)에 달한다.

여기에 직접고용 근로자의 22.9%에 이르는 기간제 근로자까지 합치면, 대기업 노동자 10명 중 4명이 비정규직이라고 노동계는 지적했다.

한국노총의 강훈중 대변인은 "제조업 전반에 만연한 불법 파견과 노동권 침해 문제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안산, 인천, 평택, 화성 등 수도권 공단 어느 곳을 찾아가더라도 불법 파견 행태를 쉽게 적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고용부가 올해 3∼5월 전국 주요 공단의 근로자 파견 및 사용업체 1천8곳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한 결과 곳곳에서 불법 행위가 적발됐다.

조사대상의 77%에 달하는 771곳에서 적발된 법 위반사례는 1천769건에 달한다.

152개 업체는 일시·간헐적 사유 없이 파견근로자를 상시 사용했고, 38곳은 형식상 도급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제로는 무허가 파견을 했다.

5곳은 파견기간(2년)을 위반했다.

파견 확대에 대한 우려는 근로자 사이에서도 흘러나온다.

사무직 파견근로자로 일하는 한 김모(27)씨는 "파견이 확대되면 젊은 세대 근로자들이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도 있다"며 "그렇게 되면 근로자들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현실에 안주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노동계와 정부의 주장을 절충해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질 낮은 비정규직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노동계의 우려와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파견 확대가 필요하다는 정부의 주장을 절충해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일본은 대형 파견업체가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보장토록 하는 '상용형 파견'을 도입해 경기 변동에 따라 파견 허용범위를 유연하게 조절하고 있다"며 "이러한 사례들을 벤치마킹해 우리 실정에 맞는 파견 제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정부와 여당은 노동계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파견법 개정안을 보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고용부는 "대기업의 사내하청업체가 뿌리산업 부문의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경우, 대기업이 우회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쓴다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며 "이에 대한 확실한 방지방안을 담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ss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