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고시촌 확 바꾼 청년기업의 '파격실험'
11일 오전 서울 신림동 녹두거리 맞은편 고시촌 골목. 언덕을 올라가는 길에 수십개의 고시원 건물이 밀집해 있었다. 골목 한쪽에 ‘셰어 어스(SHARE US)’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고시원이 보였다. 외관은 여느 고시원과 다르지 않았다. 내부로 들어가니 북카페를 연상케 하는 화사한 공간이 한눈에 들어왔다. 비좁고 어두컴컴한 이미지의 고시원과 달리 곳곳엔 고급스러운 느낌의 나무 인테리어와 함께 널찍한 공용 공간이 눈에 띄었다.

이곳은 5명의 청년 건축가가 공동 설립한 사회적 기업 선랩(Sunlab)이 지은 청년 공동주택이다. 과거 전국 고시생이 몰려들었던 신림동 고시촌은 2009년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면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고시원이 성황을 이루던 ‘대학동 18길’은 현재 고시원 열 곳 중 다섯 곳꼴로 빈집이라는 것이 관악구청의 설명이다. 고시촌이 급격히 낙후하면서 주거 빈곤층 지역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축사 선랩의 현승헌 대표(36)는 2013년 회사 설립 후 지금의 셰어 어스 건물인 에벤에셀고시원을 5년간 임대했다. 2013년엔 44개 방 중 네 사람만 살았다. 현 대표는 고시원 이름을 셰어 어스로 바꾸고 파격적인 실험에 들어갔다.

셰어 어스에는 혼자 쓰는 방이 없다. 1층은 오픈카페와 부엌 및 라운지, 2~4층은 2·3·6인실의 주거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방은 각각 독립 공간이어서 사적인 생활은 가능하지만 거실과 부엌, 발코니, 화장실은 함께 사용한다. 대개 고시원은 방 이외의 공간이 ‘외부 공간’에 불과했지만 셰어 어스는 1층 라운지를 비롯해 방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함께 쓰는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현 대표는 고시원의 비좁고 어두컴컴한 이미지에서 탈피해 나무 색깔 등 인테리어와 공간 재배치를 통해 고시원을 화사한 공간으로 바꿨다. 리모델링에 들어간 3억원 중 2억2500만원은 서울시에서 지원받았다.

공간을 재배치해 면적이 넓어진 대신 방은 11개로 줄었다. 지금은 11명이 입주해 있다. 수도·전기요금 등 공과금은 층별로 부과되는데 요금을 아끼려면 입주자 간 협조가 필수다. 2인실에 입주하면서 지난해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승우 씨는 “고시원에서 7년 이상 살았는데 정말 외로웠다”며 “이곳에선 다른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소통할 수 있어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셰어 어스의 월세는 보증금 없이 2인실 기준 27만원(인당 기준)으로, 다른 고시원에 비해 저렴하다. 1층 라운지 등을 지역주민에게 유료로 임대하면서 얻는 수익으로 월세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 현 대표의 설명이다. 고시원 운영자도 낙후한 고시촌에 청년이 잇달아 들어오면서 임대 수익을 얻는 데다 상권이 활발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날 셰어 어스를 찾은 박 시장은 “청년 일자리와 주거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사업”이라며 “신림동 고시촌의 새로운 도시재생 방식으로 셰어 어스 모델을 적극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