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정부의 일반해고 지침'논란
정부는 지난해 말 저(低)성과자 해고(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등 2대 노동개혁 의제에 대한 가이드라인 초안을 내놨다.

일반해고란 근로자가 근로계약에 따른 적정 성과를 내지 못할 때 사용자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침에 “객관적 기준을 토대로 인사평가를 한 뒤 개선 기회를 줬는데도 성과가 미흡하면 해고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객관적·합리적인 평가가 있어야 하고 업무 재배치 등 개선 기회가 반드시 주어져야 저성과를 이유로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영계는 “가이드라인이 제시한 인사평가 기준과 절차가 복잡해 오히려 노동시장 유연성이 떨어질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그동안의 법원 판결을 정리하고 유형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부 지침이 성과 중심 인사제도를 확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찬성하는 시각도 있다. 과거에는 저성과자를 제재하는 수단이 근무태도 불량이나 비위 등으로 징계하는 방법밖에 없었다면 앞으로는 성과 부진, 능력 부족 등을 이유로 해고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것이다. 정부의 일반해고 지침에 대한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찬성 논리와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반대 논리를 소개한다.

찬성 / 성과중심 인사제도 기틀 마련…공정한 평가·해고회피 선행돼야

지침 마련 위한 '충분한 협의'는 노·사·정 책무


[맞짱 토론] '정부의 일반해고 지침'논란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2월30일 일반해고 가이드북 초안과 취업규칙 변경에 관한 운영지침 초안을 발표한 뒤 새해가 돼서도 노·사·정 모두 대립각을 세우며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노·사·정 합의 파기와 노사정위원회 탈퇴를 공언하고 정부는 노동계와 협의 없이도 지침을 발표할지 고심하고 있다. 경영계는 정부 초안이 고용 유연성 확보에 미흡하다며 보완을 요구한다. 여기에 4월 총선까지 코앞에 있으니 노동개혁 전선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혼전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애초 일반해고 기준과 절차를 노동개혁의 내용에 포함하는 문제에 대해 노총은 이른바 ‘쉬운 해고’를 조장할 수 있다며 강력히 반대했으나, 지난 9·15 노·사·정 합의에서 노·사·정의 충분한 협의를 전제로 대승적으로 이를 수용한 바 있다. 정부의 의지가 강력한 영향도 있었지만 능력과 성과 중심의 인사제도가 기업에 점차 확산되고, 이런 흐름은 더 이상 비가역적(非可逆的) 대세가 되고 있다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성과주의 인사제도의 확산에 따라 고용정책과 노동관계법도 새로운 방향성을 추구해야 한다. 능력 중심의 채용과 배치 전환, 교육 훈련 강화, 그리고 성과 중심의 임금 결정과 인력 운용으로 기업의 인사시스템이 바뀌었고 그에 따라 노사 간 분쟁 양상도 과거와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과거에는 근로자의 근무태도 불량이나 비위 행위를 이유로 징계하는 것이 근로자에 대한 유일한 제재 수단이라고 보았지만 이제는 성과 부진, 능력 부족, 적격성 결여 등을 이유로 하는 일반해고도 정당한 해고로 인정될 여지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기업 현장에서는 성과주의 인사제도의 방향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채 과거 방식의 노무관리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시 말해 근로자의 성과나 능력을 문제 삼아 일률적으로 저성과자로 분류하고 합당하지 않은 이유를 들어 해고하는 이른바 퇴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우리 판례는 근로자의 능력 부족 등 일신상 사유가 존재하더라도 이것만으로 해고의 정당성에 직결시키지 않고 직무 전환이나 교육 훈련 등과 같은 해고 회피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엄격한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저성과만을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는 것은 부당해고로 판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성과주의 인사제도는 기업의 인사정책이므로 직접 법적 규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근로자 지위와 근로조건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어느 정도 법적 정당성을 필요로 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지표가 될 수밖에 없다.
[맞짱 토론] '정부의 일반해고 지침'논란
이런 내용을 구체화하기 위해 정부가 일반해고를 비롯해 인력 운용에 관한 가이드북을 작성·배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 판정기준을 마련해 활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작금의 노동개혁 시기에는 능력과 성과 중심의 인사제도에 관한 새로운 흐름을 명확히 이해시키고, 그것이 법적 정당성을 가지기 위한 구체적인 기준과 절차를 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노동위원회 역할이 아니라 정부의 몫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일반해고에 대한 가이드북은 단순한 행정지침이 아니라 우리 노동시장의 발전을 위한 노·사·정의 인식과 철학이 담긴 문서가 돼야 하며, 노·사·정의 ‘충분한 협의’는 이를 위한 책무가 되는 것이다.

반대 / 일반해고 판단 기준 '모호'…노동시장 유연성 더 떨어뜨릴 것

일반해고 내용 담긴 근로계약법 제정 검토해야


[맞짱 토론] '정부의 일반해고 지침'논란
지난해 12월 고용부 내 근로개선정책연구회에서 노동 판례를 분석해 유형화한 정부 초안을 미리 살펴본 적이 있다. ‘통상해고’와 관련해 당시 참석한 경영·노동경제·노동법 학자들은 노사정위원회 등에서 협의해 좀 더 신중하게 정리하자고 제안했다. 정부 초안은 노·사·정이 깊이 있게 논의하면 큰 문제가 없을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논의는 노동계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제대로 거론조차 되지 못했다. 그러자 정부는 ‘노·사·정 대타협’에서 합의한 일정에 따라 법률과 판례에 따른 가이드북을 마련했다.

‘저성과자’란 다른 근로자에 비해 업무 수행 능력과 근무성적 등이 현저히 낮은 자를 말한다. 그동안 성과를 명확히 산출할 수 있는 영업직조차도 성과 부진을 이유로 해고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영업직 사원의 연간 판매실적이 거의 없는데도 동료 직원 연봉의 70% 정도를 받는다면 통상해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려는 취지는 기업이 법률과 판례에 근거해 고용의 규칙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예견 가능성을 높이며, 노동관계 분쟁을 예방한다는 인사 관리상 의미가 있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정부 가이드라인의 주된 내용은 △직무능력과 직무성과 중심(저성과자)의 인력 운영 실행방안 △해고의 개념적 구분(통상해고·징계해고·경영상해고 등 분류) △통상해고의 사유(근로계약의 본질상 업무능력 결여, 근무성적 부진 등) △통상해고의 정당성 기준과 절차 등이 전부였다.

노동법 학자 관점에서 보면 판례에서 이미 정립된 통상해고를 정리한 일반적인 내용일 뿐이다. 구체적인 내용도 보지 않으면서 노·정 갈등만을 줄기차게 주장한 노동계의 반발에 너무나 위축된 모습이다. ‘쉬운 해고로 대량해고 사태’라는 몰아치기 여론전에 정부가 휘둘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정부안은 통상해고의 절차와 기준에 대한 그간 축적된 판례를 체계화한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통상해고가 어려운 현행 체제를 고착화할 가능성이 더 크다.
[맞짱 토론] '정부의 일반해고 지침'논란
정부안은 정당한 통상해고의 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 이를 해석하는 데 논란이 발생할 소지가 크고, 소송으로 가면 결국 법원 판결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통상임금 사건에서 많은 기업들이 정부 지침에 따랐다가 법원 판결로 뒤집어져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기업이 정부 지침을 준수했더라도, 지침은 법원 판결의 근거가 될 수 없으므로 불필요한 노사 갈등과 경영상 예측 불가능한 손실이 나타날 우려가 크다.

최근 경영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기업들은 채용→관리평가→능력개발 또는 보상→통상해고의 과정에서 능력과 성과 중심의 합리적인 인적 자원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산업현장에서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는 난공불락이다.

기업이 저성과자에게 충분한 노력을 통해 정상적인 직무능력을 회복할 기회를 부여했음에도 저성과를 회복하지 못하면 통상해고를 고려해야 한다. 이때 직업능력 향상 훈련이나 직종 전환을 통한 해고회피조치 등까지 포함해 보다 완화된 수단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향후 정책과제로서 일본의 근로계약법처럼 통상해고의 내용이 담긴 근로계약법을 제정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새해에 노사정위원회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