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 "생존이 최고의 등정…끝까지 지켜주고 싶었다"
“산에선 정상까지 오를 때든, 하산할 때든 ‘무사히 살아서 오는 것’이 최고의 목표입니다. 히말라야에선 걸음걸음마다 생사가 엇갈려요. 고(故) 박무택 대원은 그 목숨 건 여정을 함께한 동지였어요. 끝까지 지켜주고 싶었죠.”

지난해 12월16일 개봉 후 줄곧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700만 관객을 눈앞에 둔 영화 ‘히말라야’의 실제 주인공 산악인 엄홍길 대장(사진)은 지난 6일 서울 장충동 엄홍길휴먼재단 사무실에서 이같이 말했다.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6좌를 오른 엄 대장은 2004년 에베레스트 등반 중 8750m 지점에서 세상을 떠난 박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2005년 휴먼원정대를 꾸려 히말라야로 떠났다. 숨진 대원의 시신 운구가 목적인 등반은 휴먼원정대가 세계 최초였다. 영화는 이 실화를 각색해 제작됐다.

엄 대장은 “모든 산엔 신이 살고 있다”며 “내게 산은 어머니 또는 스승과도 같지만, 한편으로는 알면 알수록 너무나 두려운 거대한 존재”라고 토로하며 고 박 대원과의 인연을 회상했다. “무택이와는 히말라야에 네 번 같이 올랐어요. 2000년 둘이 칸첸중가 절벽에 매달려 하룻밤을 지새워야 했을 땐 마음속으로 유서를 쓰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죠. 칸첸중가의 신과 먼저 하늘로 간 동료들이 도와서였는지 그날 밤엔 바람 한 점 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살아날 수 있었어요.”

그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해발 8000m 이상 지대는 흔히 ‘데스 존(death zone:죽음의 지역)’이자 ‘신들의 영역’이라 불린다”며 “인간의 이성이나 감성 차원을 떠난 미치광이가 돼야 산에 오를 수 있고, 산을 경외할 수 있고, 산을 오르내리며 냉철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칸첸중가에서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순간을 함께한 고 박 대원은 엄 대장에게 특별한 동료였다. “칸첸중가에서 17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추위에 시달렸습니다. 무택이에게도 ‘졸면 죽는다’고 했지만 사실 저 역시 졸음과 환청 속에 밤을 보냈죠. 영화에선 산 위에서 서로 말을 많이 하는 것처럼 나오는데 실제로 그 고지대에선 산소가 희박해 말이 거의 안 나와요. 목소리도 모깃소리처럼 작아지고, 숨을 아끼죠.”

엄 대장은 “산에 대해 잘 모르면서 휴먼원정대를 비웃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 많이 서러웠다”며 “산악인에게 ‘산에 왜 가느냐’고 묻는 건 ‘밥을 왜 먹느냐’는 식의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털어놨다. “‘헬리콥터를 띄워 시신을 가져오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에 헛웃음만 났어요. 헬기는 아무리 높아도 고도 5500m 이상을 못 올라가요. ‘시신 하나 찾으려 왜 그 고생을 사서 하느냐’는 말도 들었는데, 그건 산악인들의 의리를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저는 그저 먼저 하겠다고 앞장섰을 뿐이에요. 휴먼원정대원 중 제가 억지로 설득해 끌고 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동료를 다시 데려오겠다는 그 마음 하나로 뭉친 겁니다.”

그는 “‘히말라야’의 흥행이 앞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결되길 바란다”며 “내 인생의 ‘17좌’는 사람이며 앞으로 평생 17좌에선 하산하지 못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히말라야의 신들이 길을 열어주셔서 산 정상에 가봤으니 이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아야죠. 네팔에 학교 16개를 짓는 작업과 함께 의료진 파견, 헬기장 건설 등 다른 봉사활동도 계획 중입니다.”

글=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