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현 스님 "나쁜 기억력이 창의력의 원천 됐어요"
“초등학교 성적표에는 ‘가’가 수두룩했고, 제 학번도 제대로 외우지 못했어요. 그대로 살면 제 인생이 너무 불행해질 것 같았습니다. 그때부터 제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공부법을 연구했죠.”

박사학위를 네 개나 가지고 있는 자현 스님(45·사진)에게 ‘공부 비결’을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최근 《미치도록 공부가 하고 싶어지는 스님의 공부법》(불광출판사)을 출간했다.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동국대 미술사학과, 고려대 철학과, 동국대 역사교육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해 국내 최다 박사학위자가 된 비결을 담은 책이다.

학창 시절 그의 암기 능력은 ‘빵점’이었다. 하지만 그는 관심 가는 게 있으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스타일이었다. 학창 시절 그는 동양철학에 심취했다. “유교나 도가, 제자백가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노자는 100번을 읽어 외울 정도였어요. 비슷한 분야여서 자연스레 불교사상에 관심을 두게 됐는데 너무 심취한 나머지 군 복무를 마치고 1992년 불교에 귀의했죠. 하하.”

암기력도 좋지 않은데 어떻게 110편의 논문을 학술지에 등재할 수 있었을까. 그는 “기억력이 좋지 않으니 새로운 것, 창조적인 논문을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암기력이 뛰어난 사람은 대가의 이야기에 갇혀버리기 쉬워 오히려 창의적 작업에는 방해가 된다는 것. 남들이 책 100권 읽을 동안 그는 1000권을 읽으려 노력했다. 부족한 기억력을 보완하기 위해 ‘이미지 기억법’이라는 것도 고안했다. 책 내용을 외우려 하는 게 아니라 책의 느낌을 기억하는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는 “이미지 기억법은 컴퓨터로 치면 도스와 윈도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자현 스님은 “공부가 되지 않을 때는 무작정 붙잡고 있지 말고 명상을 하라”고 강조했다. 그 첫 번째 단계가 ‘잡념의 양성화’다. “잡념은 끊으려 할수록 더 생각나요. 그래서 잡념을 양성화하라는 겁니다. 돈이면 돈, 직업이면 직업 뭐든 좋습니다. 질리도록 그에 관한 생각을 하고 나면 신기하게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아요. 굳이 잡념을 억누르기 위해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고,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없는 거죠.”

박사학위를 네 개나 딴 그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동양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게임을 개발해보고 싶다고 했다. “‘워크래프트’ 등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게임에는 세계관이 존재해요. 그런데 그 세계관은 대부분 서구적 문화코드를 담은 사례가 많죠. 유교나 불교, 도가사상 등의 세계관을 담은 게임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전 세계 사람이 동양적 세계관에 익숙해진다면 우리 문화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