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 엄마, 딸 상속재산 몰래 처분했다면…
A씨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두 딸을 낳은 뒤 이혼하고 다른 남자와 재혼했다. 이혼 뒤 전남편이 두 딸을 키우다가 딸들에게 억대의 땅을 남기고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두 딸의 생존 부모로서 친권자가 된 A씨는 ‘미성년자는 친권자가 법정대리인이 된다’는 점을 이용해 딸들이 상속받은 땅을 B씨에게 헐값으로 팔았다. 땅을 판 돈은 재혼한 남편의 사업자금 등에 썼다. 두 딸의 특별대리인인 할머니가 B씨를 상대로 ‘땅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당시 대법원 1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A씨가 법정대리인으로서 의무를 어기고 딸들에게 손해를 입혔다. B씨가 이런 사정을 알고도 땅을 샀으므로 원래대로 돌려야 한다”고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 산하 법원도서관이 최근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문제에 대해 30가지 판례를 담은 《판결이 궁금해요?! 판사들과 함께하는 판례 산책(민사 편)》을 냈다. 법원도서관은 “홈페이지에서 시민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관심 있는 판결을 선정토록 해 이를 담았다”며 “용어풀이와 삽화로 풀어내 독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 판례집은 전국 법원 민원실뿐 아니라 각 지방자치단체, 교육청, 공공도서관 및 법과대학 등에 배부할 예정이다. 해당 판결뿐만 아니라 관련 있는 다른 판례, 관련 법령 등도 소개했다. 법원도서관은 앞으로 형사 편, 가사 편, 행정(특허) 편 등을 추가로 낼 계획이다.

이번 판례집에는 시민이 보험과 관련한 법적 분쟁을 자주 겪는다는 점을 감안해 보험 약관에 대한 판례도 담았다. 의료사고와 관련한 판례, 중소기업 경영자가 참고할 수 있는 인사노무 판례, 교통사고 판례 등도 있다. 법원도서관은 책에서 ‘보험계약 체결 전에 발병한 질병에 대해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판례를 소개했다. 보험 가입자인 K씨가 ‘위장관기질 종양’ 진단을 받고 보험료를 청구하자 H보험회사가 “보험계약 전에 이미 안고 있던 질병”이라며 거부해 법원으로 간 사건이다. 보험 약관에는 “보험기간 중에 질병으로 입원하거나 통원해 치료받은 경우 의료비를 보상해준다”고 돼 있을 뿐 사전 질병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었다.

대법원 민사3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K씨에게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제주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약관 조항이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고 각각의 해석에 합리성이 있는 등 약관의 뜻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질병이 보험기간 중에 발생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K씨가 질병으로 인해 입원 또는 통원치료를 받았다면 보상 대상으로 삼는 게 약관 취지에 부합한다”며 “H사가 보험금 지급 채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원심은 약관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지적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