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으로 보는 세상

관광 업체·호텔·여행사 손잡고 그룹 '비스트' 팬미팅 추진
홍보비 놓고 다투다 결국 무산
[Law&Biz] 엎어진 아이돌 팬미팅…'돈싸움'된 책임 공방

“여기 서명하시고요. 이것으로 ‘한류스타 비스트의 팬미팅 계약’이 성사됐습니다.”

한류 관광상품을 제작·판매하는 국내 법인 C사는 2012년 9월25일 부산 L호텔, 국내 여행업체 D사와 계약을 맺었다. 일본에서 인기몰이하던 6인조 남성그룹 ‘비스트’의 팬미팅을 2013년 두 차례 열기로 하는 내용의 계약이었다.

역할은 골고루 분담했다. C사는 ‘팬미팅 한국 투어’ 상품을 제작해 일본팬에게 판매하는 일을 맡았다. L호텔과 D사에는 비스트 소속사와 팬미팅 협약을 맺는 임무가 주어졌다. D사는 팬미팅의 세부 프로그램을 계획하기로 했다. 예컨대 ‘비스트와 일본팬 전원이 악수하기’ ‘팬미팅 참가자의 단체 사진촬영’ ‘최소 3곡 이상 최대 5곡까지 노래 제공’ 등의 서비스였다. 그 외 L호텔은 팬미팅 좌석과 객실을 제공하고, D사는 C사가 비스트를 홍보할 때 필요한 이미지를 준비하기로 했다.

이 계약은 L호텔이 비스트를 그해 홍보모델로 위촉하는 과정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갔다. C사는 L호텔 계좌로 먼저 계약금 4억3000만원을 송금했다.

2013년 4월께 비스트의 일본 공식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업체 H사가 끼어들면서 문제가 생겼다. “비스트의 일본 공식 홈페이지에 ‘팬미팅 상품’을 홍보하려면 모집하는 관광객 1명당 1만엔(약 9만7000원)을 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홍보가 불가능해요.”

C사와 D사는 서로 “그쪽이 돈을 내라”며 비용을 떠넘겼다. 그러다 팬미팅 사전 공지가 이뤄지지 않았고 행사는 무산됐다. C사는 관광상품 판매를 일본의 한 여행사에 위탁했다. 일본 여행사는 C사 대신 H사에 메일을 보냈다. “팬미팅 행사를 공지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답장이 돌아왔다. “1인당 1만엔 수수료가 확정되지 않으면 공지할 수 없습니다.” 서로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10월로 미뤄진 팬미팅도 불발됐다. 사건은 법정으로 옮겨졌다.

C사는 억울했다. “계약을 깬 건 L호텔과 D사입니다. 계약서에는 분명 ‘팬미팅 개최일 전후 3개월간은 일본인을 대상으로 비스트의 팬미팅을 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어요. 그런데 피고는 2013년 4월 비스트 멤버 Y군의 팬미팅을 열어 계약을 위반했습니다. 제가 L호텔에 준 계약금 4억3000만원의 반환과 손해배상금 5000만원을 청구합니다.”

L호텔과 D사는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생각했다. “재판장님, 계약서에는 홍보비용을 전적으로 C사가 부담하기로 돼 있습니다. ‘C사는 팬미팅이 성공하도록 무대장치, 장식, 연출 등 필요한 모든 제반 비용을 부담한다’고 돼 있죠. C사가 H사에 수수료를 주지 않아 계약이 파기됐다는 점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법원의 판단은

서울고등법원 민사24부(부장판사 이은애)는 지난 3일 C사가 L호텔과 D사를 상대로 낸 계약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원고(C사)가 팬미팅 계약에 따른 홍보비 지급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 주된 원인이 돼 이 행사가 무산된 것으로 보이며 피고들(L호텔, D사)은 타 팬미팅 불실시 의무를 위반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원고의 잘못으로 팬미팅이 취소됐으므로 팬미팅 계약서상 약정에 따라 피고 L호텔은 원고에게 4억3000만원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Y군이 팬미팅을 연 것은 가수가 아니라 당시 아이리스2에 출연한 연기자로서 행한 것이므로 계약 의무 위반이 아니다”고 봤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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