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14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14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70)이 14일 항소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으로 감형받은 이유는 윤 회장의 배임 행위가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회사를 위한 것이었다고 재판부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울고등법원 형사4부(부장판사 최재형)는 “서민층이 예금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서울상호저축은행에 대한 지원은 예금자를 보호하기 위한 고려도 있었다”며 “계열사에 대한 지원 과정에서 개인적 이익을 취하지 않은 점도 참작했다”고 밝혔다.

◆“사익 추구하지 않아”

재판부는 “부실 계열사 극동건설과 웅진캐피탈의 자금난 해소를 위해 우량 계열사를 동원해 거액을 지원한 것이 결과적으로 지원에 나선 계열사 주주와 채권단의 손해로 이어졌다”며 검찰이 제기한 배임 혐의에는 유죄를 선고했다. ‘계열사 지원 행위 탓에 1580억원의 손해를 입혔다’는 검찰 주장 대부분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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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계열사들이 자금을 지원하면서 충분한 토의를 거치고 정보를 수집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사실상 윤 회장이 지시해 계열사 간 자금 지원이 결정됐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어 “웅진캐피탈은 사실상 윤 회장 개인 회사로 볼 수 있는데 대주주와 계열사 간 이해가 상충할 여지가 있을 때는 더욱 엄격하게 (지원 여부를) 판단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집행유예로 감형한 것에 대해 재판부는 “계열사들이 지원하기에 앞서 윤 회장이 사재 대부분을 출연해 1800억원가량의 손해를 감수했다”며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막 마쳐 다시 한 번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합당하다”고 이유를 밝혔다.

1198억원의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 혐의에 대해선 1심 때처럼 무죄로 결론났다.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전 CP를 발행한 게 투자자들에게 고의로 피해를 입히려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윤 회장과 공모한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은 신광수 웅진에너지 부사장과 이주석 전 웅진그룹 부회장도 이날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됐다.

◆윤 회장 “사적 이익 취한 적 없다”

윤 회장은 판결 직후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인 결과가 나왔다”며 “(재판부가) 구속하지 않고 기회를 줬으니 기업 회생과 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지금까지 투명 경영을 실천하려고 조금도 법에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며 “금융감독원과 검찰 조사에서도 개인 비리가 일절 나오지 않았는데 배임죄가 적용된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배임은 고의성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돼야 하는데 사재를 2000억원 가까이 털어 넣었으므로 고의적으로 계열사에 손해를 입힌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형법상 배임죄는 ‘자신의 임무에 위반하는 행위’로 규정돼 있다. 기업인이 자기 자신이나 제3자의 이익을 위해 고의적으로 손해를 끼친 게 아니어도 배임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윤 회장도 사적 이익을 취한 게 없는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밝혀졌지만 배임죄가 적용됐다. 기업인들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과감한 투자에 나서게 하기 위해선 배임죄의 범위를 보다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안재광/김인선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