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상고법원 설치 방안이 무산 위기에 처한 데는 법무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의 지난달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다. 검찰의 상고법원 설치 반대는 법조계 ‘맞수’인 법원 조직의 비대화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종래 입장을 사실상 번복하면서 법무부의 사법시험 폐지 4년 유예 방안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피의자 권리침해 여부 등에 대해 검사별로 성적을 매긴 자료를 연말까지 회원들에게서 취합해 내년 1월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법원-검찰-변호사업계 등 법조 3륜이 힘겨루기를 하며 물고 물리는 모양새다.
[Law&Biz] 핵심사안 때마다 힘겨루기…물고 물리는 '법조 3륜'
◆“상고법원 위헌” vs “법무부 일방 결정”

“법안에 동의한 의원(168명)은 절반(151명)을 거뜬하게 넘어갔는데 정작 정부(법무부)가 여기에 빠져 있어서…”. 국회 법사위 1소위 이한성 위원장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지난달 24일 상고법원 설치 내용을 담은 법원조직법 개정안 처리를 논의하는 자리에서였다.

대법원 측 대변인 자격으로 나온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은 모처럼 잡은 기회를 놓칠세라 의원들을 상대로 상고법원 설치 필요성을 역설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는 “우리 사법부 최대 현안이자 최고 역점사업이 바로 상고법원 관련 법률안”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소위 분위기는 싸늘했다. 법안 대표발의자인 홍일표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불참한 데다 판사 시절 대통령 비하 발언을 한 뒤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한 서기호 정의당 의원과 검찰 출신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물론 전문위원까지 상고법원의 문제점을 물고 늘어졌다.

그런데 이날 주 공격수는 김주현 법무부 차관이었다. 김 차관은 임 차장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국회의 동의나 대통령 임명절차 등 국민적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일반 법관에 의해, 그것도 상고사건의 대부분을 처리하도록 하는 법률안은 헌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별도 상고법원 설치가 여건상 어렵다면 대법원 소속의 상고재판부를 둘 수 있다는 대법원 측 수정안에 대해선 “법무부에 공식적으로 어떤 의견을 구하는 공문이 접수되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이와 관련, 대법원 관계자는 “그동안 공식입장 표명을 자제해온 검찰이 막판에 가자 본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분개했다. 하지만 대법원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사법시험 폐지 관련 법무부의 4년 유예 방안을 겨냥해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사시 존치에 대한 대법원의 의견은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였다. 그러나 지난 3일 “사법시험 존치 등 법조인 양성시스템은 법무부가 단시간 내에 일방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은 또 “법무부로부터 4년 동안 사법시험 폐지 유예가 필요하다는 판단의 근거에 관해 설명을 듣거나 관련 자료를 제공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발뺌했다.

◆변협, “법원, 검찰은 개혁대상”

변호사단체의 법원, 검찰 견제 강도도 만만치 않다. 상고법원 설치 반대는 대한변협이 총대를 메고 치고 나간 이슈다. 대한변협 측은 “대법관 숫자를 늘리면 상고사건 폭증도 해결하고 전관예우 관행도 근절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제동을 걸고 있다. 검사평가제는 검찰 견제를 위해 올해 도입한 야심작이다. 평가 결과 최저점을 받은 하위검사들을 공개할지는 대한변협과 지방변호사회가 논의 중이다. 하창우 협회장은 이와 함께 검찰총장과 대법관 퇴직자들에게 개업을 자제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