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1일 선고를 앞둔 ‘삼성세탁기 파손 사건’에 대해 과도한 검찰권 행사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사건 당사자인 LG전자와 삼성전자 측이 모든 법적 분쟁을 끝내기로 합의했음에도 검찰(서울중앙지검 형사4부)은 굳이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며 공소를 취소하지 않고 있다.

○“합의했다” vs “진정한 합의 아니다”

검찰은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9부(부장판사 윤승은)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조성진 LG전자 사장에게 징역 10월을 구형했다. 검찰에 따르면 조 사장은 지난해 9월3일 독일 베를린에 있는 가전매장 두 곳에서 삼성전자 크리스털블루 세탁기 3대의 도어 연결부를 부순 혐의(재물손괴)와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명예훼손, 업무방해)를 받고 있다. 검찰이 밝힌 구형 사유는 “삼성 세탁기를 고의로 망가뜨리고 품질을 깎아내리는 보도자료를 승인하고도 뉘우침이 없다. 출석도 계속 미룬 점 등을 고려해 실형이 선고돼야 한다”는 것이다.

LG전자 측은 검찰의 강경한 입장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LG전자 측의 한 관계자는 “한 정치권 인사의 주선으로 양측 기업 총수 간에 법적 절차 취소를 합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3월에 “두 회사 간 모든 법적 분쟁을 끝낸다”며 양측이 문서로 공식 합의했고, 이에 따라 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 간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 유출 사건은 종결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재물손괴죄는 벌금형이 선고되는 약식재판으로 기소하는 게 보통”이라며 “검찰이 정식재판에 회부해 징역형을 구형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반의사불벌죄에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공소 취소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검찰 관계자는 “조 사장이 세탁기를 부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세탁기 값을 물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양측 간에 진정한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검사의 기소가 명백히 잘못되지 않은 이상 설사 피해자와 가해자 간에 합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특혜를 준다고 의심받을 수도 있어 공소 취소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형사소송법(255조)은 “공소는 1심 판결 선고 전까지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세탁기 수리비 100만원 vs 수억원대

검찰의 기소로 기업들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재판에 쏟아붓고 있다. 특히 검찰의 화력에 맞서야 하는 LG전자의 방어비용이 적지 않다. 검찰 주장에 따르더라도 3개 세탁기의 망가진 부품 수리비는 대당 30여만원 총 100만원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검찰 수사와 법정 공방으로 들어가면서 소요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먼저 검찰 수사 단계에서 LG전자 측은 검찰 출신의 정병두(사법연수원 16기) 금태섭(24기) 두 변호사를 선임했다. 이들은 각각 인천지검장과 서울중앙지검 검사를 지낸 전관들이어서 선임료가 족히 수천만원씩 한다. 법원 재판 단계에서는 국내 최고 로펌인 김앤장의 베테랑 변호사 4명이 합류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