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배자의 위치를 모두 파악하고도 경찰 40여명이 바깥에서 경계만 서고 있다. 3교대로 경계를 하니 수배자 한 명을 지키는 데 동원된 인력만 150여명이다.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이 몸을 숨긴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지난 16일 밤 10시40분께 한 위원장이 조계사로 피신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검거에 나섰다. 강력팀, 지능팀, 생활범죄팀 등 각 부서에서 야근 중이던 경찰관 수십명이 버스 1대와 6인승 승합차 3대에 나눠 타고 출동했다. 인근 경찰서에서도 지원을 받아 한 시간 뒤 조계사 주위를 에워싼 경찰관은 40여명에 달했다.

당직근무를 하던 경찰관 상당수가 조계사로 출동해 종로경찰서는 한때 ‘치안공백’에 빠졌지만 정작 현장에 간 경찰관들은 한 위원장을 검거할 수 없었다. 조계사는 명동성당 등 다른 종교시설과 함께 공권력이 함부로 진입할 수 없는 장소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조계사는 2000년대 후반부터 시국사범의 도피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수배자들의 대표적인 피신처는 명동성당이었다.

결국 경찰은 한 위원장이 조계사에서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도주하는 것을 막는 수밖에 없다. 경찰 80여명으로 구성된 1개 기동대와 수사인력 40여명이 돌아가며 경계를 서고 있다. 종로서 직원만으로는 손이 부족해 서울시내 다른 경찰서에서도 지원을 받았다. 이와 별도로 서울지방경찰청과 남대문경찰서가 공동으로 꾸린 한 위원장 검거전담반 30여명도 활동하고 있다. “한 위원장이 조계사에 있는 바람에 국민을 위한 치안에 나서야 할 경찰력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한 위원장을 검거하기 위해 조계사에 강제진입할 계획은 없다”며 “불교계와 협의해 조계사에서 한 위원장에게 강제퇴거를 요구하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했다. 이에 조계종 측은 “한 위원장과 관련한 입장은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밝혔다.

한 위원장은 지난해 5월 세월호 희생자 추모집회에서 종로대로를 점거하고 청와대 방면 행진을 시도한 혐의로 지난 6월 불구속 기소됐으나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