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핀테크·사물인터넷…첨단 기술서 돌파구 찾는 로펌들
김모씨는 무인 운전 시스템이 있는 자동차를 구입해 운행하다가 최근 수억원짜리 외제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김씨는 “무인 운전 시스템이 잘못돼 사고가 났으니 손해배상을 하라”고 자동차 회사에 요구했지만 회사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책임 공방을 하다 보니 자동차 회사 뿐만 아니라 무인운전 소프트웨어 공급자, 실시간 교통정보 처리자 등이 얽혀들었고 책임을 얼마씩 분담할지 모호한 상황이 됐다. 실시간 교통정보 처리자는 자신의 서버가 외국에 있으니 한국 법이 아닌 외국 법을 기준으로 책임을 가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

첨단기술에 따라 생활환경이 달라지면서 등장할 수 있는 가상의 상황이다. 이런 미래의 법률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대형 로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법무법인 충정은 지난 11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영국계 로펌 버드앤드버드와 공동으로 ‘사물인터넷(IoT) 공동 세미나’를 열었다. IoT와 법률 문제에 주목해 세미나를 연 로펌은 국내에서 충정이 처음이다. 연충규 충정 지식재산권파트장은 “IoT가 보편화되면 하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여러 주체가 개입하게 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소재도 복잡해진다”며 “미래에 이런 문제가 로펌들의 새 일거리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핀테크는 대형 로펌이 최근 들어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분야다. 주요 대형 로펌들은 예외 없이 올해 핀테크팀이나 IT 관련 팀을 새로 출범시키는 등 해당 업무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를 크게 늘렸다. 관련 팀을 ‘핀테크팀’으로 이름 붙인 김앤장과 화우, 태평양에서는 각각 최동식 변호사(사법연수원 12기), 이광욱 변호사(28기), 노태식 고문(전 전국은행연합회 부회장)이 팀장을 맡았다. 세종에서는 윤종수 변호사(22기)가 IT전문그룹장을, 광장에서는 박광배 변호사(17기)가 금융IT팀장을 맡고 있다. 율촌은 ‘정보통신기술 및 규제 연구팀’을 꾸리고 손도일 변호사(25기)에게 팀장을 맡겼다.

로펌들이 이처럼 첨단 기술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건 법률시장 성장의 한계에 대응해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국내 변호사업 매출은 2013년 3조6198억여원으로, 전년도 3조4755억여원에 비해 4.2%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08년에는 매출 3조27억여원으로 전년 2조4439억여원에 비해 22.9% 증가한 것과 대비된다. 아직 통계가 나오지 않은 지난해와 올해 매출에 대해서도 대형 로펌 사이에서는 “현상 유지만 했어도 잘한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로펌들이 적극적인 비즈니스를 하다 보니 시장에서 이름을 널리 알린 핀테크 상품에는 대부분 로펌의 ‘지문’이 찍혀 있다. 광장은 삼성페이의 설립을 자문했고 태평양은 한국카카오은행(카카오뱅크)이 금융위원회에 인터넷전문은행 예비 신청을 할 때 법률 업무를 담당했다. 법무법인 율촌은 첨단 테크놀로지와 법률 문제를 연구하는 세계 로펌 연합체 ‘테크로 포럼’에서 활동하고 있다. 손도일 율촌 변호사는 “정보의 국경 간 이동이 중요해지는 만큼 한국의 규제를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동향에도 관심을 가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종수 세종 변호사는 “정기적으로 내부 세미나를 하는 등 첨단 테크놀로지 환경에 발맞춰 관련 법제와 대응 방안을 연구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