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적인 반대 '실익없다' 판단…한화테크윈·종합화학 사례 반면교사
대우증권 등 다른 업종·기업에 확산될지 주목


삼성그룹 사업재편 과정에서 매각이 결정된 삼성정밀화학 소속 노조원들이 사측과 함께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인수자인 롯데그룹과 협상에 나서기로 했다.

통상 인수·합병(M&A) 대상이 된 기업 노조는 무조건적인 매각 반대 투쟁 등을 펼치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 수위가 격렬할수록 매각에 따른 위로금 등 '성과물'의 크기도 덩달아 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삼성정밀화학 노사의 이번 결정이 이례적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3일 삼성정밀화학 등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삼성그룹과 롯데그룹 간 '빅딜' 발표 이후 삼성정밀화학 노조는 향후 대응방안 등을 놓고 주말 내내 노조원 간 격론을 벌였다.

통상 삼성그룹은 '무노조 경영'으로 알려져 있지만 삼성생명처럼 이미 노조가 설립된 회사를 인수한 경우에는 기존 노조 활동을 인정하고 있다.

삼성정밀화학은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선대 회장 시절인 1964년 한국비료란 이름으로 설립됐다가 '한비사건'으로 국가에 헌납됐다.

이후 1971년 노조가 설립돼 1994년 삼성그룹의 품으로 돌아온 후에도 노조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현재 삼성정밀화학 임직원 800여명 중 절반 이상이 노조 소속이다.

노조 소속 간부들은 매각이 결정된 지난 30일 이후 주말에도 서울과 울산 공장을 오가며 노조원들의 의견을 구했고 결국 '투쟁' 보다는 '협상'을 선택했다.

2011년 748억원, 2012년 556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삼성정밀화학은 이후 대규모 투자에 나섰으나 세계 경기 침체로 수익성이 나빠지면서 2013년 203억원, 2014년 24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이미 일반 노조원은 물론 노조 소속 간부들까지 희망퇴직해야 했던 뼈아픈 경험을 했다.

노조는 올해 들어 선제적 투자가 빛을 발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한 상황에서 매각 반대 일변도의 투쟁을 펼칠 경우 회사가 다시 위기를 맞을 수 있고 이는 노조원들의 고용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앞서 삼성에서 한화그룹으로 소속이 바뀐 한화테크윈과 한화종합화학 사례는 '반면교사'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한화 소속으로 새 출발한 한화종합화학은 지난 1월 노조를 설립한 지 10개월 만인 지난달 파업에 돌입했다.

주력 제품인 테레프탈산(TPA) 가격이 폭락, 적자에 허덕이던 한화종합화학은 노조가 전면 파업에 들어가자 직장폐쇄를 단행, 정상화의 길은 더 멀어졌고 노사간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한화테크윈 역시 지난 6월 사명 변경 등의 안건이 올라간 주주총회와 창원 제2사업장 출입 방해를 이유로 삼성테크윈지회 조합원 62명을 대량 징계했다.

자칫 투쟁 일변도로 나아갈 경우 오히려 노조원들의 고용 안정성을 해치고 회사 경영난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점을 외면할 수 없었다.

사측이 단순히 회사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한 것이 아니라 임직원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이번 결정을 이끈 한 요인이 됐다.

성인회 삼성정밀화학 사장은 30일 오전 매각이 결정되자마자 서울 본사 임직원들을 만나 매각 배경 및 불가피성에 대해 설명하고 최대한 고용보장과 임직원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몇시간 뒤에는 비행기를 타고 울산 공장으로 내려가 현장 근로자들에게도 이같은 입장을 전했다.

하루 아침에 매각 소식이 전해진 한화토탈이나 한화종합화학 등과 달리 삼성정밀화학 임직원들은 이미 어느 정도 매각을 예견했었다는 점도 노조의 차분한 대응으로 이어졌다.

삼성토탈과 삼성종합화학이 한화 계열사로 편입된 뒤로 삼성그룹이 남은 화학계열사인 삼성종합화학과 삼성BP화학을 매각할 것이라는 전망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매각 발표가 있기 수일 전부터는 삼성 화학 계열사들이 롯데케미칼로 넘어간다는 구체적인 얘기가 증권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기도 했다.

삼성정밀화학 관계자는 "그동안 매각설이 끊이지 않으면서 직원들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면서 "매각 발표 이후에도 큰 동요는 없었다"고 전했다.

업계는 이번 삼성정밀화학 노사의 결정이 함께 매각이 결정된 삼성BP화학, 삼성SDI 케미칼사업부문 직원들은 물론 현재 매각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우증권 등 다른 산업 및 기업 노조의 대응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정밀화학 노조의 결정 역시 노조원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그동안 노동계가 기업 매각 등의 사례에서 무조건적인 반대 입장을 보인 것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삼성정밀화학 노조의 이번 결정이 다른 기업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박대한 기자 pdhis95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