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드민트 헤리티지재단 회장 "한국, 중국으로부터 얻을 게 뭔지 냉정하게 따져봐라"
헤리티지재단 본부 건물은 워싱턴DC의 미국 의회 의사당 바로 옆에 있다. 짐 드민트 헤리티지재단 회장의 사무실에선 창문 너머로 수리 중인 의사당 돔이 가깝게 보인다. 드민트 회장은 “헤리티지는 미국 의회와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호흡하며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1973년 창립된 헤리티지재단은 미국의 싱크탱크 가운데 정책적으로 미국 의회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정책개발 조직으로 평가받는다. 드민트 회장을 만나 미국과 일본 등 12개국이 이달 초 협상을 타결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외교·안보·금융·개혁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드민트 회장은 연방 상·하원의원을 지낸 정치인 출신답게 부드럽지만 강한 신념이 담긴 어투로 질문에 답했다.

▷미국과 일본 등 12개국이 협상 시작 7년 만에 타결한 TPP에 대해 어떻게 평가합니까.

“TPP 협상 타결은 원칙적으로 시장 확대와 안보 강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협상 타결 자체보다는 내용이 중요합니다. 미국의 정치인, 전문가, 언론이 이번 결과에 대해 바로 평가를 내놓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르면 내달 초 협상 타결안 전문이 나옵니다. 내용을 봐야 협상 성공 여부를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TPP 협상 초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두고 실기(失機)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수출 비중이 큰 한국은 그동안 자유무역협정(FTA)에 가장 앞선 나라였습니다. TPP에 대해서도 아마 숙고했을 것입니다. 한국에도 역시 TPP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TPP 참여 12개국이 높은 수준의 규범으로 시장을 개방했는지, 안 했는지가 한국의 전략 실패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입니다.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습니다. 미국 행정부가 협상 결과에 서명하기 전까지 의회는 최소 90일, 일반 국민은 60일의 시간이 있습니다.”

▷미국이 TPP를 추진한 이유 중 하나가 ‘중국 견제’였습니다. 지난달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등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는데요. 미·중 관계에 대해 어떻게 전망합니까.

“우선 미국과 중국은 서로 적대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관계처럼 봐선 안 됩니다. 두 나라는 연간 6000억달러에 달하는 교역을 하고 있습니다. 양국 지도자들은 이런 교역관계로 인해 이전보다 훨씬 더 풍요롭게 살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갈등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은 최근 남중국해 영유권 같은 영토 관련 문제에서 매우 확장적인 정책 기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역할 확대를 지지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국제규범을 지키고, 미국 동맹국들의 이해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한국과 미국은 중국이 이런 점을 인식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한국은 최근 통일 기반 다지기와 경제협력 차원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석 등과 관련해 미국 내에서 한국 외교의 소위 ‘중국 경사론’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짐 드민트 헤리티지재단 회장 "한국, 중국으로부터 얻을 게 뭔지 냉정하게 따져봐라"
“중국의 경제발전이 세계 각국에 많은 기회를 주고 있고, 한국이 그 때문에 베이징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박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통일 문제를 논의하는 것도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는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에 실익이 별로 없다는 얘기인가요.

“중국은 연평도 해전, 천안함 폭침뿐 아니라 올해 휴전선 지뢰폭발 사건 때도 북한의 도발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통일 과정에서 중국이 북한에 얼마나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반면 미국 젊은이 3만7000여명은 지금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언제라도 목숨을 던질 각오를 하고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이번 미국 방문은 한·미 간의 오해를 풀고, 동맹 관계를 재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중국 등 신흥국 경제상황을 이유로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했습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전 세계 초미의 관심사가 됐는데 언제쯤 올릴 것으로 봅니까.

“Fed가 금리를 빨리 올려서 얻을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금리를 올렸다가 상황이 나쁘다고 바로 내릴 수는 없을 테니까요. 세계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고 미국 경제도 회복됐다는 확실한 데이터를 손에 쥔 다음에야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Fed 개혁을 계속 주장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Fed 개혁이 금리정책 정상화보다 훨씬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Fed의 권한을 축소하고, 정책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미국뿐 아니라 세계경제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금융회사에 대한 관리감독에 실패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Fed가 다시 더 큰 권한을 갖고 경제를 치유하겠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Fed의 관리감독 기능을 분리하고, 기준금리 결정에 참여하는 위원들에 대한 인사도 투명하게 해야 합니다.”

▷한국은 신성장동력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최근 노동개혁 등 구조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바람직한 성장전략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헤리티지재단은 1995년부터 월스트리트저널(WSJ)과 공동으로 매년 170여개 국가의 경제자유지수(Index of Economic Freedom)를 측정해 순위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부패와 투명성, 세금, 정부 간섭, 노동시장 유연성, 통화정책 등 10개 항목을 측정하는데 지난해 한국은 100점 만점에 71.5점으로 29위였습니다. 특히 노동시장 지수가 51.1점으로 세계 평균(60점)에 크게 못 미쳤습니다. 한국은 안정된 정치 시스템과 엄격한 근로윤리, 풍부한 고학력 노동력, 기술 혁신 등 좋은 기반을 갖고 있으면서도 경직된 노동시장 때문에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용시장이 지나치게 경직돼 기업들이 고용과 해고에 너무 비싼 비용을 들이고 있습니다. 이를 개선하는 게 급선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정부가 노동개혁을 국정과제의 앞자리에 둔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 드민트 회장은 …

짐 드민트 헤리티지재단 회장 "한국, 중국으로부터 얻을 게 뭔지 냉정하게 따져봐라"
짐 드민트 회장(64)은 2013년부터 헤리티지재단을 이끌고 있는 정치인 출신 정책개발 전문가다. 연방 상·하원에서 14년간 활동했다.

1992년 공화당에 들어가 1999년부터 사우스캐롤라이나주(州)에서 연방 하원의원으로 3선을 했고, 2005년 상원에 입성했다. 산업, 통상, 환경, 은행 등 경제 분야 상임위원회를 두루 거쳤고 자유무역협정(FTA), 정부 지출 구조조정, 감세 관련 입법을 주도했다. 보수 우파 정치단체인 ‘티파티’ 리더로 알려져 있다.

드민트 회장은 2013년 상원의원 임기가 남은 상태에서 헤리티지재단으로 옮겨 화제를 낳았다. 그는 “강한 미국이 되기 위해선 자유주의 경제에 바탕을 둔 탄탄한 정책 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교 시절 밴드의 드럼 연주자로 활동하기도 했고, 정치 입문 전에는 리서치회사 ‘드민트그룹’을 세워 운영했다.

△1951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 출생 △1973년 테네시주립대 졸업 △1981년 클렘슨대 경영대학원 석사(MBA) △1983년 드민트그룹 설립 △1999~2005년 연방 하원의원(3선) △2005~2013년 연방 상원의원(2선) △2013년 4월 헤리티지재단 회장

■ 헤리티지재단은 …

헤리티지재단은 보수주의 성향의 미국 싱크탱크다. 워싱턴DC에 본부가 있으며, 연구원 270여명이 기업의 자유와 작은 정부, 개인의 자유, 국방 강화 등을 기치로 정책을 개발하고 있다. 폴 웨이리치와 에드윈 풀러가 주도해 1973년 설립했으며, 초기 재원은 맥주회사 쿠어스의 사주인 조지프 쿠어스가 25만달러를 기부해 마련했다. 현재는 수십만명의 개인과 기업 회원들이 낸 기부금으로 운영한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