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해외 바이어의 시추선 건조 계약 파기는 가격 낮추려는 전략적 행위"
“해외 바이어들이 전략적으로 계약을 파기하는 등 부당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한국 기업을 매도해선 안 됩니다.”

영국계 로펌 스티븐슨하우드의 김경화 한국대표는 국내 대형 조선사들이 해외 플랜트 건조 계약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이들 조선사가 수천억~수조원씩 영업손실을 보고 있는 이면에는 치열한 법리 다툼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국제소송의 전망은 그러나 전문가에 따라 다소 엇갈렸다.

외국법 자문 법률사무소로는 21번째로 한국에 진출한 해상사건 전문 로펌 스티븐슨하우드는 현재 런던해사중재협회(LMAA)에서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기업을 대리해 해양플랜트 건조 계약 문제를 중재하고 있다.

13일 여의도 서울국제금융센터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김 대표는 분쟁의 가장 결정적 원인으로 국제유가 하락과 이에 따른 해양플랜트 시장 침체를 지목했다. “국제유가 시장이 좋았더라면 많은 문제가 계약 당사자 간에 적절히 합의됐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시추선 등 해양플랜트를 구입해 셸, 엑슨모빌, 송가 오프쇼 등 오일 메이저 회사에 빌려주는 바이어들이 이런 불경기에 종종 뽑아 드는 카드가 ‘전략적 계약 파기’다. 정당한 사유에 따른 공기 연장에 대해서도 일단 계약을 취소하고 보는 것이다.

계약이 파기되면 잘잘못을 떠나 한국 조선사들은 일단 수세에 몰린다. 재판이 진행되는 2년여 동안 시추선을 팔지 못하면 현금이 부족해 어려움에 빠지는데 이를 이용해 중재 등 협상 과정에서 가격을 낮추는 게 바이어들의 전형적인 전략이다.

김 대표는 “현재 진행 중인 한국 기업 소송에서도 건조 계약 파기의 상당수는 전략적 파기에 해당한다”며 “공기 연장을 초래한 불합리한 계약 조건 변경 등에 대해 그에 부합하는 비용을 청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세종의 신웅식 변호사는 “계약서상의 납기를 맞추는 것이 턴키 계약 등으로 이뤄지는 국제적 거래에서는 특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설계부터 완공까지 시공사가 모두 책임지는 턴키 방식 계약은 파생상품이라는 특성이 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 수십개 금융거래가 납기에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웬만한 사유로는 납기를 연장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70년대 중동 건설 붐 당시 현지에서 법률로 기업들을 뒷바라지하면서 ‘해외 건설의 전설’이라는 별명을 얻은 신 변호사는 “해외 건설에서는 금융 리스크와 법률 리스크를 꿰고 있는 전문가의 사전 자문이 필수적”이라며 “프로젝트에 관여하는 금융회사에서도 해당 거래의 기술적 계약 조건을 검토하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