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비의 월스트리트’ > 미국의 로비회사들이 밀집한 워싱턴DC ‘케이스트리트’. 백악관에서 세 블록가량 떨어진 이곳은 1930년대 이후 ‘로비의 월스트리트’라 불리며 미국 로비업계를 상징하고 있다. 한경DB
< ‘로비의 월스트리트’ > 미국의 로비회사들이 밀집한 워싱턴DC ‘케이스트리트’. 백악관에서 세 블록가량 떨어진 이곳은 1930년대 이후 ‘로비의 월스트리트’라 불리며 미국 로비업계를 상징하고 있다. 한경DB
‘로비스트 양성화가 필요하다’는 법무부 용역결과에 따라 로비스트 양성화 논의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로비스트를 양성화하자는 논의는 정치권에서 권력형 비리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제기됐다. 음성적이고 비밀리에 행해지는 로비가 각종 비리로 이어져 국민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만 키운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대형로펌 등은 검찰과 국세청, 국회 등 관련 기관 출신 공무원을 직접 고용해 사실상 로비스트로 활용하고 있다. 음성적으로 로비가 진행되는 가운데 국회에 접근하기 힘든 중소기업이나 이익단체들은 불이익을 볼 수밖에 없다. 로비스트를 양성화해야 한다는 얘기가 더 힘을 받는 이유다. 이우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로비활동 법제화 방안’ 용역 보고서에서 “자유무역에 따른 국가 간 상호의존도 증대로 국제적 차원의 로비 수요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비리 막으려면 로비 공개 필요”

[로비스트 합법화되나] 법무부 "로비 합법화는 정치시장 경쟁 촉진…자원배분 효율 높여"
한국에서 로비스트법 논의가 시작된 것은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1993년이다. 당시 민간인 전문가로 구성된 국회제도개선위원회는 “로비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고 로비 양성화를 정치개혁 과제 중 하나로 제시했다.

이후 ‘린다 김 사건’, 경부고속철 사업 등 불법 로비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로비를 양성화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1999년 입법 로비를 통해 체육진흥복표(현 스포츠토토) 사업을 따냈던 타이거풀스코리아의 국민체육진흥법 개정 로비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관련 법안은 공청회나 간담회 없이 조용히 상임위와 본회의를 통과해 해당 업체에 수천억원대의 복표 사업권을 안겼다. 상임위 위원들은 이 업체에서 각각 수백만원의 후원금을 받았다. 이 같은 사실은 3년 뒤 ‘최규선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야 드러났다. 조승민 글로벌입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만약 로비가 합법화돼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공개 경쟁이 이뤄졌다면 뒤늦게 비리가 드러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용역 보고서에서 “한국처럼 국회 상임위 권한이 강하고 정부 입법이 많은 국가에서는 효율적인 정보 유통을 위해 로비스트가 필요하다”며 “로비활동을 제도화해 정부의 입법과 정책결정 과정까지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구체적으로 로비활동의 등록은 국회가 담당하고 관련 위반행위가 나타나면 국회사무처가 법무부에 통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1998년 사망한 미국의 경제학자 맨서 올슨은 저서 ‘집단행동론’에서 “정치 엘리트를 중심으로 한 이익집단의 정치가 가져올 폐해를 막기 위해 로비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며 “집단 간 경쟁적 로비가 사회 전체적인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정적인 여론 극복이 과제

하지만 로비스트 양성화 관련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다. 국가청렴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가 로비스트 합법화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 등 법제화에 들어가고 법무부가 관련 입법을 추진했던 2007년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정몽준·이승희·이은영 의원 등도 관련 법 개정안을 마련해 힘을 실었다.

이 같은 시도는 “로비스트 업무는 법률사무인 만큼 비(非)법조인이 로비스트 자격을 얻는 것은 맞지 않다”는 변호사업계의 강력한 반발에 막혔다. 이후에도 2011년 ‘청목회 로비사건’ 등을 거치며 로비 합법화 필요성은 계속 제기됐지만 법제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도 지난해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최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과 ‘관피아 방지법(공직자 윤리법)’ 등의 국회 통과로 이해관계자가 정치권에 의견을 전달하는 길이 좁아진 점도 로비스트 합법화의 근거로 제시된다. 송원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합법적인 로비스트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김영란법 통과로 기업과 정부·입법부 관계자 간 만남이 어려워져 기업 활동에 어려움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대형로펌 대표는 “부정한 청탁이 아니고 정당한 절차에 따른 설득이라는 의미에서 로비를 양성화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로비 합법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로비스트가 합법화되면 불법적인 청탁이나 뇌물 수수가 더 늘어날 것”이라며 “국민 입장에서도 로비스트를 써야 민원이 해결되는 것으로 인식돼 부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형주/양병훈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