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 케임브리지에는 케임브리지 산학협력기관인 케임브리지 엔터프라이즈를 중심으로 케임브리지공대, 글로벌 기업 연구센터, 스타트업이 밀집해 있다. 한경DB
웨스트 케임브리지에는 케임브리지 산학협력기관인 케임브리지 엔터프라이즈를 중심으로 케임브리지공대, 글로벌 기업 연구센터, 스타트업이 밀집해 있다. 한경DB
요즘 영국 대학가에서는 ‘케임브리지대의 서진(西進)’이 단연 화제다. 케임브리지시 중심에 흩어져 있던 케임브리지 공과대학이 약 3년 전부터 3.2㎞ 떨어진 서쪽으로 일제히 이동하고 있어서다. 한국으로 비유하면 서울 신림동에 있는 서울대 공대 캠퍼스가 구로디지털단지까지 이동한 셈이다.

케임브리지공대가 옮겨간 웨스트 케임브리지에는 대학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히타치, 노키아 등 30여개 글로벌 기업의 연구센터와 스타트업 300여개가 자리 잡고 있다. 4~5년 전만 해도 목초로 덮였던 땅에 기업 연구개발(R&D) 시설을 유치한 것이다. 케임브리지공대의 이전은 이 같은 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케임브리지대는 이곳에 산학협력 전담기구인 케임브리지 엔터프라이즈를 설립, 산학협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처럼 공대가 기업들이 있는 곳으로 이전하는 현상은 미국과 유럽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단순히 기업의 발주를 받아 연구하는 것을 넘어 물리적 융합으로 나아가려는 시도다. 교수진과 학과 커리큘럼부터 산업 현장과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한국의 공대 현실과는 대비된다.
[산업현장서 멀어진 공대] 기업 밀집지역으로 이전하는 선진국 공대…산학협력 새 모델 제시
○기업·대학, 물리적 융합이 대세

핀란드 오타니에미 사이언스 파크는 기업이 대학을 찾아온 경우다. 1960년대 중반 헬싱키 서쪽의 위성도시 에스푸 지역에 헬싱키공대가 설립된 이후 1980년대부터 노키아 본사 등 글로벌 기업이 학교 인근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2010년 산학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해 헬싱키공대와 헬싱키디자인예술대, 헬싱키경제대 등 3개 대학을 합병해 알토대를 설립했다. 스웨덴 왕립공대와 스톡홀름대는 얼마 전 공동으로 과학기술단지인 시스타사이언스시티에 정보기술(IT)대학을 설립했다. 두 대학이 있는 스톡홀름에서 북서쪽으로 10㎞ 이상 떨어진 곳이다. 에릭슨과 IBM연구센터를 필두로 750여개 회사가 입주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이어 세계 2위 IT클러스터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들 공대가 목표로 하는 모델은 미국 동부의 ‘리서치트라이앵글파크(RTP)’다. 1959년 주정부가 나서 RTP를 설립하기 전 노스캐롤라이나주는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주 가운데 하나였다. 공업 기반이 없어 가구와 담배 등이 주요 산업이었다. 노스캐롤라이나주는 듀크대와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노스캐롤라이나대와 기업 창업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일대를 첨단산업기지로 탈바꿈시켰다.

교수부터 창업에 앞장서고 대학 내에서 적극적으로 창업 관련 교육을 하면서 수많은 세계적 기업이 탄생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통계학과 교수가 1976년 설립한 비즈니스 분석 소프트웨어 기업 SAS를 비롯해 세계 1위 임상연구 조직인 퀸타일스, 통계분석기관 RTP인터내셔널 등이 이 지역 교수와 학생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지역 특성 고려한 전략 필요”

송성진 성균관대 공대 학장은 “공대와 기업의 산학협력 모델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20세기 초까지 교육에만 집중하던 것이 1세대 공대라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계에 필요한 기술을 연구하던 것이 2세대 공대이고, 이제는 대학과 기업이 결합해 새로운 산업과 부를 창출하는 3세대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송 학장은 “해외 유수 공대들은 글로벌 기업과의 물리적 거리를 좁히는 방식으로 산학협력을 활성화하고 있다”며 “앞으로 공대의 생존은 기업들과 얼마나 유기적으로 융합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러시아 국영과학기술연구기관인 스콜텍은 지난해 공동으로 발표한 ‘대학 기반의 기업가적 생태계 만들기’ 보고서에서 “대학과 기업이 지리적으로 같은 공간에서 장벽을 파괴하는 것이 소통과 기술 이전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국내에서도 일부 지역에서 산학 융합을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산학협력 모델로 꼽을 만한 대학은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 옆에 자리 잡은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정도다. 한국산업기술대 일부 학과가 이전한 경기 시화지구와 군산(군산대와 전북대 일부 학과 이전) 구미(금오공대 일부 학과 이전) 등지에서도 물리적 융합이 부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