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사전검증·책임추궁 장치 없어"…제도개선 요구

'성완종 리스트'로 엉뚱하게 번진 검찰의 자원개발비리 수사가 반년 만에 일단락됐다.

검찰은 3대 에너지 공기업 전직 사장 가운데 2명을 재판에 넘기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지난해 정치권을 들끓게 했던 자원외교의 허상을 완전히 드러내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은 형사처벌에서 나아가 공기업이 신규 투자사업을 벌일 때 사전심사를 철저히 하도록 법으로 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첫 단추 잘못 꿰 흐트러진 수사망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는 작년 연말 형사사건으로 비화했다.

야권과 시민단체는 에너지 공기업 전직 사장들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올해 1월에는 감사원이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을 고발하고 민사상 책임도 물으라고 통보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수사에 섣불리 나서기는 어렵다는 게 검찰 내부 분위기였다.

사기업 오너도 아닌 공기업 사장에게 배임죄를 들이댈 수 있느냐는 논란이 있었다.

이런 기류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3월12일 '해외자원개발과 관련한 배임, 부실투자'를 구체적으로 지목해 부정부패 척결 의지를 밝히면서 180도 바뀌었다.

검찰은 몇 달 동안 접수한 고발장을 전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넘겼다.

'경영상 판단'이었다는 주장을 넘어설 횡령이나 금품로비 혐의를 밝혀내겠다는 뜻이었다.

고심 끝에 고른 첫 타깃이 결국 화근이 됐다.

검찰은 국무총리 담화 엿새 만에 성완종 전 회장의 경남기업을 압수수색하며 수사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회삿돈 횡령은 물론 분식회계를 이용한 사기성 정부융자 정황도 드러났다.

마다가스카르 니켈광산 사업에 발을 담근 경남기업에 광물자원공사가 특혜를 제공한 의혹도 있어 공기업 상대 본격 수사의 디딤돌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성 전 회장이 4월 9일 정치권 금품로비 목록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자원외교 수사의 동력은 급격히 사라졌다.

부정부패 발본색원을 주장한 이완구 전 총리도 결국 제 발목을 잡은 셈이 됐다.

전열을 재정비한 수사팀은 5월12일 석유공사를 압수수색하며 전직 공기업 사장들을 직접 겨눴다.

그러나 뒷돈 거래 등 권력형 비리를 캐내지는 못했고 배임 혐의를 입증할 논리 구성에 집중했다.

◇ "사업성 사전검증 장치 필요"
전직 공기업 사장들은 하나같이 "자원개발 사업의 특수성으로 인한 경영상 판단이었기 때문에 법적 책임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미 시작된 강 전 사장의 재판에서도 배임죄 성립 여부를 두고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검찰은 공기업에 배임죄를 더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강 전 사장과 김신종 전 광물자원공사 사장의 경우 신중한 경제성 검토 없이 독단적으로 사업을 밀어붙여 '경영상 판단'이라는 논리로 빠져나갈 여지가 없다고 본다.

무리한 투자로 인한 피해가 전부 국민에게 돌아가는 반면 공기업 사장에게는 해임 결의 등 책임을 물을 장치가 없어 사실상 전횡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나아가 이번 수사에서 드러난 몇가지 제도상 허점을 정비하고 관련자에게 책임을 물어달라고 산업통상자원부에 통보했다.

검찰은 정부부처나 지방자치단체처럼 예비타당성 조사, 투·융자 심사 등 사전에 사업성을 검증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가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편성지침'을 만들고는 있지만 대부분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대상으로 분류해 실질적인 감시·감독이 이뤄지지는 못한다고 검찰은 지적했다.

공기업 경영진에게 독단적 의사결정으로 인한 손해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장치도 제안했다.

국가가 공기업 임원진을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 소송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2월 산업통상자원부가 석유공사에 강 전 사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라고 요구했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조치가 없는 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자원개발 사업이 자원의 국내 도입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주개발률 등 형식적 수치를 달성하기 위해 추진됐다"며 "단계별 통제장치가 있긴 하지만 반대의견이 무시되고 사후 추인의 역할에 그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dad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