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세종을 나와 별도 로펌을 차린 김준민(왼쪽부터), 김범수, 이은녕 변호사. KL파트너스 제공
법무법인 세종을 나와 별도 로펌을 차린 김준민(왼쪽부터), 김범수, 이은녕 변호사. KL파트너스 제공
법무법인 세종의 국제중재팀 핵심 멤버들이 세종을 나와 최근 별도의 로펌을 차렸다. “성장의 한계에 봉착한 대형로펌의 대안을 제시하고 싶다”는 것이 분가의 주된 이유다. 팀 단위로 경쟁 로펌에 스카우트돼 둥지를 옮기거나 개별 변호사가 대형로펌을 뛰쳐나오는 사례는 종종 발견되지만 이처럼 팀 단위로 딴집살림을 차린 경우는 이례적이다.

○대형로펌의 한계 갈수록 두드러져

김범수 변호사(사법연수원 17기)와 함께 ‘거사’를 도모한 사람은 이은녕 변호사(33기)와 김준민 변호사(미국) 등 3명. 모두 회사법과 기업 인수합병(M&A)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이들이 세운 KL파트너스는 국제분쟁과 국제거래에 특화된 로펌이다. 내년 말까지 30명가량의 중소로펌을 일구는 게 1차 목표다.

김범수 변호사는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를 대리해 투자자국가소송(ISD)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앤장의 윤병철, 태평양의 김갑유, 광장의 임성우 변호사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중재 전문가의 ‘탈(脫) 대형로펌’은 업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김 변호사는 “로펌의 덩치가 커지다 보니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의뢰인을 위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며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걸맞은 수익을 창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준민 변호사는 “대형로펌 이름만 보고 변호사를 선임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국내 로펌들은 그동안 경쟁적으로 몸집을 키워왔다. 그러다 보니 결재단계가 길어져 시장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고 사건마다 과다한 인력 투입으로 불필요한 비용만 부풀려 놓았다. 여기에 장기 경기침체로 덤핑이 일상화되면서 수익성은 현저히 떨어지는 등 구조조정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는 것이 KL파트너스가 고발하는 대형로펌의 속살이다.

○대형로펌 부럽지 않은 강소로펌 ‘부상’

이런 현실에서 대형로펌에서 실력을 쌓은 뒤 분가하거나 틈새시장을 노리는 강소로펌들의 등장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이들은 규모는 작지만 맨파워와 특화된 서비스만큼은 대형로펌 못지않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김앤장 출신으로 금융·기업이 전문인 최영익 변호사가 설립한 넥서스는 변호사 총 22명에 설립된 지 5년밖에 안된 신생 로펌이다. 하지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에 반대하는 미국계 자산운용사 엘리엇매니지먼트를 대리해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과 맞붙었다.

대형 노동·선거소송에는 엘케이비앤파트너스가 단골로 등장한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홍준표 경남지사와 조희연 서울교육감, ‘삼성세탁기 고의 파손’ 혐의로 기소된 조성진 LG전자 사장 등이 이광범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대표 등을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판·검사 출신이 중심이 된 19명의 단출한 규모지만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이 대표, 노동법 전문가 최은배 대표 등 내로라하는 전관들이 포진해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 밖에도 정보보안과 정보기술(IT) 분야의 테크앤로(대표 구태언 변호사)와 민후(대표 김경환 변호사), 문화예술 분야 지식재산권 분쟁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강호(대표 조정욱·박찬훈 변호사), 의사 출신 변호사들이 포진한 로앰(대표 이동필·김연희 변호사)과 복합통증이 전문인 서로(대표 서상수 변호사) 등은 차별화한 서비스로 대형로펌과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