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공립고 교사 이모씨(59)는 최근 명예퇴직을 했다. 내년 이후에 퇴직하면 공무원연금이 월 7만원 정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정년퇴직까지 3년간 더 근무하면 매년 연봉 6000만~7000만원 정도를 더 받을 수 있지만 공무원연금이 앞으로 더 줄어들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명퇴를 결심했다.
'불안사회'가 빚은 교사들의 명퇴 행렬
명예퇴직 교사 갈수록 늘어나

올해 전국 초·중·고교에서 명예퇴직을 신청한 교사는 1만6575명으로 2년 전보다 178.8% 늘었다. 교육부가 강은희 새누리당 국회의원에게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한 ‘교원 명예퇴직 현황’에 따르면 2011년 4476명, 2013년 5946명이던 명퇴 신청 교사는 지난해 1만3413명으로 큰 폭으로 뛰었고 올해는 더 늘었다.

교사들의 명퇴 신청 급증은 지난 6월 국회를 통과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내년부터 적용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올해 명퇴하지 못한 교사들은 연금 감소가 불가피하다. 정부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공식 추진한 시기는 지난해 10월이지만 연금 축소 가능성은 지난해 초부터 거론됐다. 명퇴 신청 급증과 시기가 맞아떨어진다.

국가 부채가 늘어나는 것도 교사들의 불안심리를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는 지난주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국가 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40.1%에 달해 처음으로 40%대에 진입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년 새 늘어난 국가빚 93조원의 절반은 공무원·군인연금 적자를 메우기 위한 충당부채였다. ‘이번 연금 축소가 마지막이 아닐 것’이라는 우려가 여전하다.

명퇴 신청자 많아 재수·삼수 예사

확정된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따르면 교사와 비슷한 7급 행정공무원을 기준으로 20년차 공무원의 연금액은 월 평균 232만원으로 기존(243만원)보다 11만원 줄어든다. 30년차 이상은 연금액이 크게 줄지 않지만 하루라도 빨리 교단을 떠나자는 50대 후반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두 번 명퇴 신청을 냈다가 실패하고 올 2월 ‘삼수’ 끝에 명퇴한 안모 씨(57)는 13일 “명퇴 신청이 늘어나면서 나이가 많은 순으로 기회를 줘 교사들도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 불안이 가중되고 교권 침해 사례가 늘어난 것도 명퇴 급증의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이 스승의 날을 맞아 지난 5월 시행한 교사 설문조사에서는 명퇴 신청 이유로 ‘교권 하락 및 생활지도의 어려움에 대한 대응 미흡’이라는 응답이 전체의 55.8%를 차지했다.

학교 현장은 교사 부족 사태를 빚는 등 혼란이 심해지고 있다. 정년퇴직까지 포함해 올해 퇴직한 교사는 1만2000여명인데 임용된 교사는 1만340명 수준에 그치고 있어서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감은 “지난해보다 명퇴 수용이 많아지면서 기간제 교사조차 구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상대적으로 정보가 빠른 교사들은 국가 부채 증가로 정부가 또다시 연금개혁에 나설 것으로 보고 서둘러 명퇴를 신청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과도한 복지혜택 축소 등 국가 재정 건전성을 높여 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태웅/강경민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