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9조 세금불복 판결 비전문가에 맡기는 정부
세제(稅制) 경험이 거의 없는 비전문가들이 준(準)사법기관인 조세심판원에서 연 9조원대에 이르는 조세불복 사건의 상당수를 심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부처에서 날아온 ‘낙하산’ 심판관들이 ‘납세자 구제’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나눠먹기식 심판관 구성

6일 국무총리실에 따르면 조세심판원은 공석인 상임 심판관으로 행정자치부 소속 J과장을 내정해 승진 발령을 앞두고 있다. 조세심판원은 국민의 조세불복 사건을 다루는 총리실 산하 행정기관으로 여섯 명의 상임 심판관과 30명의 비상임 심판관 체제로 운영된다. 납세자의 조세불복 청구가 들어오면 대부분 상임 심판관 두 명과 비상임 심판관 두 명이 다수결로 납세자 승소 여부를 결정하는 구조다.

이번에 상임 심판관으로 내정된 J과장은 세금 전문가로 보기 힘들다는 게 주변의 공통된 평가다. 국세기본법에선 상임 심판관 자격을 조세 경력 3년 이상 경험을 가진 고위 공무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J과장은 지방재정세제실에서 3년 이상 업무를 맡아 해당 조건을 충족했지만 1년 이상은 주소정책 관련 일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실 출신인 현직 S심판관도 조세 업무를 맡은 적이 거의 없다. 사회복지정책관 등을 지내면서 국무 조정 업무를 했던 게 경력의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관세청 파견근무 경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1월 상임 심판관으로 선임됐다. 관세청에선 주로 공직 감찰을 다루는 감사관을 지냈다. 정부 관계자는 “상임 심판관 여섯 자리는 각각 암묵적으로 관련 부처의 몫으로 할당돼 있다”며 “해당 부처의 인사 요인에 따라 전문성 없는 심판관이 임명되는 일이 드물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상임 심판관은 기획재정부 출신 두 명과 국무총리실과 국세청 출신 각각 한 명, 자체 승진 한 명으로 채워져 있다. 나머지 한 자리는 행자부 몫인데 지난해 5월부터 1년 넘게 공석으로 방치됐다. 행자부가 상임 심판관 자격을 갖춘 인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세심판원은 지난해 자체 승진 인사를 선임하려고 했지만 행자부 반대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뒤늦게 J과장이 내정된 배경이다.

○흔들리는 공정성

독립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상임 심판관 중 한 자리는 국세청 몫이다. 조세심판원이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비상임 심판관 30명 중에도 국세청 관세청 등 과세당국 출신이 일곱 명에 이른다. 국세청 출신 심판관이 국세청 선후배가 과세한 사건을 다루는 구조다. 반대일 때도 문제다. 비상임 심판관에는 조세불복 사건을 직접 다루는 법무법인 출신이 세 명 포함돼 있다. 10명은 기업 사외이사를 겸하고 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갑순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은 “상임 심판관 절반은 비전문가 또는 불공정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공무원의 자리 보전을 위해 납세자 권익이 무시되고 있다”고 했다.

조세심판원 판결에 대한 의구심도 높아지고 있다. 법무법인 관계자는 “인용률(납세자 승소 비율)이 연도별로 차이가 너무 커 납세자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조세심판 청구세액(국세 기준) 10억원 미만의 인용률은 2013년 31.0%에서 작년엔 14.6%로 반토막 났다.

한 법학과 교수는 “조세심판원이 법원과는 다른 판결을 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상임 심판관의 비전문성이 혼선을 빚은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비과세 지역인 보세공장에 납품한 제품에 대한 과세 적절성 논란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 7월 법원은 세금을 부과한 관세청의 손을 들어준 반면 조세심판원은 한 달 뒤 납세자의 불복 청구를 받아들였다.

김주완/조진형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