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병상 이상 병원 음압병상 의무화
정부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확산했던 배경에 한국의 부실한 의료전달체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막무가내 ‘의료 쇼핑’ 문화와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대규모 감염을 불렀다는 것이다.

정부는 1일 발표한 ‘국가방역체계 개편방안’에서 병원 간 환자 의뢰 절차를 제도화하기로 했다. 의사가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보내면서 진료의뢰서를 쓸 때마다 건강보험에서 돈을 지원해주겠다는 구상이다. 이 제도가 제대로 자리 잡으면 환자 마음대로 병원을 옮겨 다니는 지금과 달리 체계적인 의뢰 시스템을 활용한 병원 이동이 가능해진다.

입원실 면회시간을 제한하는 가이드라인도 만들기로 했다. 아이들까지 데리고 병문안을 가는 등 국내 병실 문화가 감염에 취약하다는 비판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 응급실에 24시간 머무르는 환자가 특정 비율(3%)을 넘지 않도록 의무화할 계획이다. 유명 대형병원들은 이 비율이 5%를 넘는다.

경증 환자가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는 바람에 당장 진료가 필요한 응급 환자가 피해 보는 일이 없도록 대책도 마련한다. 경증 환자의 응급실 진료비를 올리거나 진료를 아예 제한하는 방안(권역응급센터)도 검토 중이다.

‘방역직’ 공무원도 새로 생긴다. 현재 공중보건의에 의존하고 있는 역학조사관을 정규직으로 대폭 확충한다. 이를 통해 전문 역학조사관을 현재 2명에서 3년 후 60여명까지 늘린다는 방침이다. 감염관리실을 꼭 설치해야 하는 병원 기준도 기존 ‘200병상 이상’에서 ‘150병상 이상’으로 바꾼다. 300병상 이상 병원은 음압격리병실(병원체가 외부로 퍼지는 것을 차단하는 격리 병실)까지 꼭 설치해야 한다.

유력하게 논의됐던 감염병전문병원 신설 방안은 국립중앙의료원의 감염병 역량을 강화하는 정도로 대체됐다. 중앙의료원이 150개 이상의 음압병상을 갖추도록 했다.

질병관리본부를 보건복지부와 독립된 ‘청’으로 승격해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았지만 복지부는 완전한 독립 대신 본부장만 차관급(현재는 1급)으로 격상하는 소극적 개편안을 택했다.

대신 예산권과 인사권을 일임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신종 감염병이 발생하면 복지부는 지원 역할만 하고 질병관리본부가 방역을 총지휘하도록 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