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개봉2동에 사는 노정만 씨(68)는 24년째 소유하고 있는 다가구주택을 올해 말까지 처분하기로 했다. 2000년 이전만 해도 주로 직장인이나 젊은 부부가 세 들어 살았지만 지금은 6가구 중 5가구의 임차인이 노인이다. 노씨는 “경제력이 취약한 노인 세입자가 많아지면서 5년째 임대료를 못 올리고 있다”며 “주변에 노인 인구가 늘면서 집값도 잘 오르지 않아 집을 팔고 젊은 층이 많은 다른 지역에 투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 변두리가 늙어간다] 강남 신사동에 6개 있는 스타벅스…노인 많은 28개동엔 4곳뿐
서울 변두리 지역의 빠른 고령화는 자산시장과 상권, 지방자치단체 재정 등에 영향을 미친다. 이들 지역에서는 편의점보다 슈퍼마켓이, 대형마트보다 전통시장의 장사가 잘되는 등 유통구조도 다른 지역과 달랐다. 주택 임대료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집값 약세로 이어지기도 했다.

대형마트보다 전통시장 강세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스타벅스는 서울 시내에 331개가 있다. 서울의 전체 행정동 수는 423개로 10개동에 7~8개의 스타벅스가 있는 셈이다. 강남구 신사동에만 스타벅스 매장 6개가 있다. 하지만 노인인구 비율이 10년 새 두 배 이상 증가한 28개동에는 4개가 전부다. 10개동당 1개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윤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전문가들은 스타벅스의 유무를 놓고 지역 경제력을 가늠하기도 한다”며 “노인인구가 빠르게 느는 지역의 경제적 여건이 열악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한 노인이 전통시장에서 화물을 배달하고 있다. CJ대한통운 제공
한 노인이 전통시장에서 화물을 배달하고 있다. CJ대한통운 제공
대형마트에 밀리는 전통시장도 여기선 사정이 다르다. 28개동 인근 전통시장은 46개에 이른다. 서울 시내 전체 전통시장(344개)의 13.4%로 이들 동이 서울 시내 전체 동에서 차지하는 비중(6.6%)의 두 배를 넘는다. 면목4동 인근의 면목시장은 평일 낮인데도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상인회 관계자는 “노인들은 전통시장 이용이 익숙한 데다 상인과의 관계도 중요시해 더 자주 찾는다”고 했다. 5년 전만 해도 손님이 뜸했던 대림2동의 대림중앙시장도 노인인구가 늘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이들 지역 전통시장과 슈퍼마켓은 노인 소비자 수요에 맞춰 배달 서비스를 활성화하고 있다. 번2동에서 10년간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한 상인은 “무거운 상품을 들고 집까지 가기 어려운 노인 고객을 위해 생수 몇 통이라도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했다. 장재남 프랜차이즈산업연구원장은 “노년층은 물리적으로 장거리 이동이 힘들기 때문에 배달 서비스를 많이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인식이 많았지만 노인이 많은 지역에서는 작은 구멍가게나 전통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세탁소, 철물점, 슈퍼마켓 등 생활편의 업종과 정형외과, 약국, 건강원 등 의료 관련 업종이 이들 지역에서 유망할 것으로 내다봤다.

노령화에 재개발은 난항

노인인구 증가는 부동산장에 악재다. 올초 서울시는 관악구 행운동 봉천6-1구역에 대한 재건축정비사업 지정을 해제했다. 2008년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구성된 지 7년 만이다.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층의 반대가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 행운동의 만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지난해 11.6%로 2005년 6.0%에서 10년간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이타임공인 관계자는 “토지 지분이 많은 다가구주택의 집주인은 대부분 어르신인데 월세 외에 수입이 없는 경우가 많아 집을 내놓는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는 주택 노후화로 이어져 집값 및 임대료 하락 요인이 된다. 개봉2동, 면목4동 등 노인인구 비율이 10년 새 2배 이상 늘어난 지역에서는 월세 20만원의 임대물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부터 서울 대부분 지역의 전·월세 가격이 급등한 것과 대비된다. 개봉2동 서울공인의 신석금 대표는 “서울 주택 임대료와 비교해 저렴하지만 집이 낡고 교육환경이 나빠 젊은이들은 좀처럼 와서 살려 하지 않는다”며 “그 빈자리를 계속 어르신들이 채운다”고 설명했다.

이춘우 신한은행 PB고객부 팀장은 “고령화에 따라 부동산 차별화도 가속화될 것”이라며 “노인이 늘어나는 지역은 교육과 편의시설 등 생활 인프라도 낙후될 수밖에 없어 집값 상승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상용/김동현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