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제외하고 형법상 배임죄를 두고 있는 나라는 독일과 일본밖에 없다. 한국은 이들 두 나라에 비해서도 배임죄 구성 요건 등이 포괄적이라는 게 학계와 법조계의 분석이다. 한국이 기업인에게 가장 불리하게 배임죄를 규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1851년 세계 최초로 배임죄 조항을 명문화한 독일에서도 실제 배임죄로 처벌한 사례는 많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2005년 ‘경영판단의 원칙’을 도입한 이후 배임죄 처벌은 더 드물어졌다.

경영판단의 원칙은 경영자가 기업 이익을 위해 신중히 판단해 결정했다면 설사 기업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해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독일 연방대법원은 보험사 아락(ARAG)의 대표가 신규 사업에 투자했다가 회사에 손실을 끼쳐 배임죄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 대해 2011년 무죄를 선고했다.

독일의 법체계를 받아들인 일본도 배임죄 적용 요건이 엄격하다. ‘손해를 가할 목적’이라는 표현을 명문화해 고의성을 가진 때만 배임죄로 처벌하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는 명목상 배임죄는 없지만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영자를 처벌하는 조항이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 역시 엄격하게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미국은 1982년 루이지애나 대법원 판결로 경영판단의 원칙을 확립했다. 이해관계 없이 충분한 정보에 근거해 신의성실한 경영상의 판단을 내렸다면 회사에 손해를 가져오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프랑스는 1953년 대법원의 ‘로젠블룸 판결’에 따라 계열사 간 상호 지원에 대해서도 기업집단 간 발생하는 전체적 이익을 고려해 신중하게 법을 적용하고 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