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에 대한 광복절 사면론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기업의 법률 업무를 보조하는 로펌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보고서 작성부터 관계공무원 접촉까지 로펌의 역할은 다양하다. 담합문제로 입찰 참가자격 제한을 받은 건설사 또는 군수업체가 큰 관심을 보이고 있어 ‘사면 컨설팅’이 로펌의 새로운 수입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로펌, 사면 자문에 분주

한국경제신문이 21일 확인한 바에 따르면 행정제재를 받은 기업 등이 로펌에 사면과 관련해 자문하는 사례가 최근 크게 증가했다. 최상위권 로펌을 중심으로 일부는 컨설팅 요청을 수 건 받았다. 아직 정식 수임하지 않은 곳도 향후 수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변호사 A씨는 “의뢰인에 대한 사면이 법률적으로 가능한지 검토하는 등 보고서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한다”며 “사면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정치적·법률적인 당위성을 부각해 논리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오는 8·15 광복절에 단행하려는 특별사면은 법무부와 청와대를 거쳐 대상자가 결정된다. 법무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사면심사위원회가 누구를 사면할지 심사·의결하면 법무부 장관이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이후 대통령은 재가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이를 공포·실시한다. 로펌은 이 과정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관련 공무원 등과 접촉해 의뢰인에 대한 사면 필요성을 설명하는 일도 한다. 이 단계는 인적 네트워크가 충분히 갖춰져야 가능한 만큼 고위급 판·검사를 지낸 법조인이나 행정·입법부 고위공무원을 지낸 로펌의 고문 인력 등이 주로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사 B씨는 “사면심사위에서 명단을 만들어 올리면 이후 청와대가 검토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명단 작성 단계에서부터 청와대의 의중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청와대 민정라인과 법무라인을 중심으로 접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변호사 C씨는 “재판 변호를 한 형사팀이 의뢰인의 수감기간 등을 감안해 업무를 챙기고 법제컨설팅팀이 보조한다”고 말했다.

건설·군수업체, 촉각 곤두세워

사면 자문에 가장 관심을 보이는 곳은 건설과 군수업체라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들 분야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이 큰 소비자인데 담합 등 부정당행위가 적발되면 짧게는 1개월에서 길게는 2년 동안 모든 관급 입찰 참가가 금지되기 때문이다. 이 제재로 회사가 큰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사면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이런 행정처분에 사면 조치를 내릴 수 있다.

변호사 D씨는 “역대 정부를 보면 5년 임기 가운데 한 번 정도는 행정대사면이라는 이름으로 입찰참가자격 제한 조치를 풀어줬다”며 “이번에도 사면 얘기가 나오면서 업체들의 기대감이 올라가 관련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엔 통신과 전자업체도 부정당행위 제재를 받아 문의하는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면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인 만큼 로펌이 법령 설명 이상으로 관여하는 게 쉽지는 않다. 그러나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사면에 성공한 사례가 간간이 입에 오르내린다. 대기업 대표를 지낸 E씨는 회사에 수십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형이 확정된 지 10개월 만에 석방됐다. 그는 검찰에서 오래 근무한 변호사의 컨설팅을 받았다.

이런 과정이 자칫 부적절한 로비로 의심받을 수 있어 조심하는 분위기도 있다. 변호사 F씨는 “우리 회사를 사면대상자 명단에 끼워줄 수 있겠냐는 문의가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했다”며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 팀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