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forced to work'을 한국은 '강제노역', 일본은 '일하게됐다'
"강제성 부정은 징용피해자 소송에 미칠 영향 의식한 것"

일본 정부가 자국 산업 시설의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발표한 성명의 일본어 번역본에서 '강제노동'이라는 표현에 물타기를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사토 구니(佐藤地) 주유네스코 대사는 5일(현지시간) 독일 본에서 열린 세계유산위 회의에서 영어로 정부 성명을 읽으며 "1940년대 몇몇 시설에서 많은 한국인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 끌려와 가혹한 환경에서 일하기를 강요받았다(forced to work)"고 말했다.

여기서 '강제노역'을 의미하는 'forced to work'라는 표현과 관련, 일본 정부가 언론에 제공한 가번역은 '일하게 됐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수동형 표현인 '하타라카사레타'(人변에 움직일 動かされた)였다.

영어 표현 'forced'는 명확히 강제성을 담고 있지만, 일본어 표현 '하타라카사레타'는 '억지로 일했다' 또는 '하고 싶지 않은데 일하게 됐다' 정도의 뉘앙스를 담은 표현이다.

예를 들어 정해진 근무시간 이후 상사의 지시에 따라 일한 경우에도 쓸 수 있는 등 해석 범위가 넓은 표현이다.

결국 'forced'에 담긴 강제성을 충분히 반영한 해석으로 보기 어려운 것이다.

이 같은 정부의 가번역은 아사히 뿐 아니라 교도통신과 도쿄·마이니치·니혼게이자이 등 여러 신문에 인용됐다.

다만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정부 가번역본을 이용하지 않은 채 'forced to work'를 '노동을 강요당했다'로 해석한 기사를 실었다.

일본 정부가 이처럼 '강제성'에 물을 탄 번역본을 만든 것은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미지불임금 등에 대해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됐다'고 주장해온 기존 입장과 관련이 있다.

한반도 식민지배가 합법적인 조약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는 식민지였던 한반도 사람들에 대한 강제 징용을 법적으로 '자국민 동원'의 일환으로 간주한다.

또 임금을 지급한 만큼 '노예 노동'과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그런 논리에 따라 조선 출신 피징용자에 대해 '강제징용피해자'라는 표현을 쓰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징용공'이라는 표현을 써왔고, 이들의 미지불 임금 문제 등은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해왔다.

그런 만큼 불법성이 짙은 '강제노동'이라는 표현을 공식 사용할 경우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점을 일본 정부는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이 'forced to work' 표현에 대해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가 강제노동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배경과 관련, "불법성을 띤 '강제 노동'이란 문구가 세계유산 등록 결정과 같은 국제적인 장에서 사용되면 일본 기업에 대한 징용공의 한국내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에게 유리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도 인정한 것 처럼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본인 의사에 반해 끌려온' 점, 자유롭게 일을 그만둘 자유나 이동의 자유가 없었던 점 등으로 미뤄 본질상 '강제노동'이었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일본은 1938년 4월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하고, 그 다음달 국가총동원법을 조선, 대만, 사할린에서 시행키로 함으로써 필요에 따라 한반도에서 인력과 물적자원을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는 법 체계를 마련했다.

이어 1939년 7월 조선노무자모집요강을 제정, 모집 형식으로 조선인을 동원하다, 1942년 2월부터 1944년 8월까지 관의 알선 형식으로 조선인을 동원한 뒤 1944년 9월부터 이듬해 패전 때까지 국민징용령에 따라 강제로 조선인을 데려갔다.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