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실질임금 높여야" vs "영세업체 다 망하란 얘기"

내년도 최저임금 협상이 파행을 거듭하며 타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시급과 월급의 병행 표기가 새로운 논란거리로 떠오르면서 노동계와 경영계가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의결 기한인 이달 29일은 고사하고 내달 초 타결도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노동계 "월급 병기하면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 줄 것"
28일 경영·노동계에 따르면 이달 29일 열리는 최저임금위원회 7차 전원회의에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비롯한 사용자위원들은 불참키로 했다.

지난 25일 회의에서도 사용자위원들은 '월급 병기안'을 표결에 부쳐야 한다는 근로자·공익위원들의 주장에 맞서 전원 퇴장했다.

이들은 노동계가 '최저임금의 시급·월급 병기'를 계속 주장하는 한 내년도 최저임금 논의 자체를 거부키로 했다.

최저임금 협상이 갈수록 파행으로 치닫는 분위기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근로자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으로 이뤄진다.

논란이 되는 월급 병기안은 이달 18일 회의에서 일부 공익위원이 제기했다.

최저임금 협상은 29일이 의결 기한이지만, 이렇듯 상황이 나빠지면서 기한 내 타결은 물 건너간 일이 됐다.

현재 최저임금은 시급으로 결정되고 고시된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 5천580원이다.

월급으로는 116만6천220원(월 209시간 기준)이다.

노동계가 월급 병기를 주장하는 것은 '유휴수당'을 제대로 못 받거나, 실제 근로시간을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최저임금을 월 209시간 기준의 월급으로 계산할 때는 주 40시간이 아닌 주 48시간의 임금이 적용된다.

하루 8시간씩 5일 근무하면, 하루치(8시간) 임금이 유급 휴일수당(유휴수당)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PC방, 호프집, 편의점 등에서 일하는 많은 노동자가 유휴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

유휴수당이 적용되는 월급으로 최저임금을 명시해, 이들이 유휴수당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경비원이나 택시기사 등은 실제 근로시간을 인정받도록 하기 위해서 최저임금 월급 병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학교 경비원으로 일하는 오한성(75)씨는 "하루 16시간 근무를 하지만 근무시간으로 인정받는 것은 5.5시간에 불과하다"며 "결국, 한달 내 일해도 월급은 85만원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월급으로 최저임금이 명시되면, 이처럼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월급을 받는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임금을 받게 될 것이라고 노동계는 주장한다.

◇ 경영계 "현실 무시한 얘기…대량해고·파산 부를 것"
경영계는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병기하자는 주장이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실제 근로시간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해당 업종의 고유한 특성상 불가피한 것으로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아파트 경비원의 경우 실제 근로시간을 전부 인정받게 되면 월급이 200만원을 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자동개폐문과 폐쇄회로(CC)TV로 경비원들을 대체하는 아파트들이 속출할 것이라는 얘기다.

택시기사들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기본급을 받는다고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노력 정도에 따라 회사에 사납금을 내고 남은 돈을 성과급으로 챙길 수 있어 단순 비교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김동욱 경총 기획본부장은 "메르스로 인한 극심한 경영난으로 식당, 술집 등 영세 자영업자들은 현 임금 수준으로도 아르바이트생들을 고용하기 빠듯하다"며 "최저임금이 더 올라가면 이들이 파산하거나, 아니면 알바생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용자위원들이 29일 전원회의에 불참하면, 근로자·공익위원들은 이들의 출석을 이번 회의와 다음 회의 두 차례에 걸쳐 요구한 후 '월급 병기안'을 표결에 부칠 수 있다.

결국 다음 달 초까지 회의가 파행을 겪으면서, 정작 중요한 내년 최저임금 인상안은 당분간 논의조차 못 할 가능성이 커졌다.

노동계는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79.2% 오른 시급 1만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제시했으며, 경영계는 동결을 주장하고 있다.

노동계는 경영계의 이러한 움직임이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여야 정치인들도 약속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라며 격앙된 분위기이다.

한국노총 허윤정 경제정책부장은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월급 병기안'을 이렇듯 극단적으로 거부하며 논의조차 하지 않으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논리냐"고 반문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다음 달 4일 서울광장 등에서 대규모 공동집회를 연다.

이어 중순께는 연대 총파업마저 벌일 계획이어서 최저임금을 둘러싼 기 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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