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확진 환자 나오면 병원 운영 타격 우려"
감염 걱정해 환자 스스로 병원 방문 꺼리기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일부 동네병원에서 감기 환자의 진료를 꺼리는 일이 늘고 있다.

발열·기침 등 감기로 인한 증상이 메르스 초기 증상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친절이 강조됐을 의료현장 곳곳에서 메르스로 인한 긴장감과 불편한 장면이 생기는 것이다.

보건 당국은 발열, 기침, 콧물 등 경미한 감기 증상이 있는 경우 선별진료소를 방문해 혹시 모를 감염 여부를 우선적으로 진단받을 것을 권고했다.

부산시 동래구에 사는 주부 김모(50)씨는 15일 중학생 아들에게 열이 나자 학교를 보내지 않고 함께 동네의원으로 갔다.

의사는 메르스와 관련한 질문을 몇 개 던지더니 황급히 진료를 끝내고 약을 처방했다.

기력이 떨어진 아들에게 영양제 링거를 놔달라는 요청에는 손사래를 쳤다.

김씨는 기분이 상했지만, "부산 밖으로 나간 일이 없고, 주말에는 집에만 있었다"고 설득한 끝에 겨우 아들에게 영양제를 맞힐 수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경북 포항시 주민 A(50)씨는 17일 오전 자녀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아이에게 열이 난다"는 전화를 받고 학교로 달려가 아이를 데리고 동네의원을 찾았다가 사실상 진료 거부를 경험했다.

아이에게 열이 있다는 말만 듣고 의사가 "메르스 신고 전화로 연락해 보라"며 아예 접수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포항시는 이 의원이 접수도 하지 않은 행위가 진료거부에 해당한다고 보고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인천 청라동에 사는 이모(37·여)씨 역시 이달 15일 다섯 살배기 아들이 고열과 설사 증상을 보여 집 근처 내과를 찾았지만, 의사가 "아이의 체온이 37.6도까지 올랐다"며 모자를 서둘러 인근 대학병원으로 안내했다.

의사의 과민한 반응에 불안해진 이씨는 인천의 한 종합병원에 아들을 데리고 가 단순한 감기라는 판정을 받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물론 차분하게 감기 환자를 응대하는 병원들도 있었다.

감기가 몇 주간 지속돼 18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한 내과를 찾은 김모(29·여)씨는 병원 문 앞에 '메르스 의심자는 들어오지 말고 앞에서 전화하시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살짝 긴장했다.

병원으로 들어간 김씨가 "기침과 가래가 몇 주간 끊이지 않아서 왔다.

미열도 있다"고 말하자 접수를 하던 간호사가 바로 김씨의 체온을 쟀다.

체온계에 37도가 찍히자 간호사는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던 전국 병원 리스트를 보여주며 이 병원들에 갔던 적이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다녀온 적이 없다'는 김씨의 답에 간호사는 진찰실로 안내했다.

김씨가 "만약 열이 37.5도가 넘었으면 중동이나 메르스 관련 병원에 다녀오지 않았어도 여기서 진료받을 수 없느냐"고 묻자 간호사는 "그렇다"고 답하면서 그러면 인근 보건소나 안심병원으로 안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병원을 통한 메르스 감염을 우려해 환자 스스로 의료기관 방문을 꺼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강원도 춘천에 사는 직장인 조모(36)씨는 17일 체온이 38도까지 오른 것을 보고 가까운 동네병원에 가려다 생각을 바꿨다.

최근 확진 판정을 받은 메르스 환자들이 주로 병원에서 감염된다는 소식을 들은 탓에 병원 문턱을 넘기가 께름칙했기 때문이다.

혹시 메르스에 감염된 게 아닌가 하는 걱정에 조씨는 보건소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증세를 상세히 설명하며 상담을 받았다.

조씨는 "호흡기나 기관지에 메르스와 유사한 증세가 없는 만큼 좀 더 증세를 지켜보자는 답을 듣고서야 한숨 놓았다"며 안심했다.

동네 병원들이 감기환자를 꺼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메르스 확진 환자가 거쳐 갔다는 병원이라는 소문이 나면, 병원 경영에 큰 타격을 받기 때문이라는 게 의료계의 설명이다.

한 지방대학병원 관계자는 "메르스 확산에 따른 불안감에 일반 환자는 줄어든 반면 1·2차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지 못해 오는 단순 발열 증상 환자가 부쩍 늘어났다"며 업무 과중을 토로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무조건 큰 병원으로 갈 것을 권유하기보다는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살펴보고 적절히 조처하는 게 의사로서의 도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강창구 김동규 민영규 손현규 이재현 임상현 전창해)


(전국종합=연합뉴스) d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