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헤이스팅스·롭스앤드그레이 등 외국법 자문으로 존재감 입증
기업 소송·IPO 분야 적극 공략…美 소비자 맞서 국내기업 대리도
고속 성장에 인력·사무실 확장…"법률시장 완전개방이 분수령"
[Law&Biz] 한국 입성 4년 외국로펌…'실속' 챙기고 '몸집' 불린다

코오롱과 듀폰 간 영업비밀 침해 관련 민형사 소송이 양측 간 합의로 마무리된 직후인 지난 1일. 김종한 폴헤이스팅스 한국지사 대표가 미국에서 현지 분위기를 전해왔다. “6년 넘게 끌어온 소송이 끝나 홀가분합니다.”

김 대표는 2009년 2월 첨단 섬유소재 아라미드 관련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듀폰이 코오롱을 상대로 법적 다툼을 벌인 첫날부터 코오롱 측을 대리해왔다. 코오롱이 민사 및 형사 합의금으로 각각 2억7500만달러와 8500만달러 등 3억600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했지만 폴헤이스팅스 한국지사와 코오롱 경영진 간 긴밀한 의사소통이 없었다면 더 큰 비용을 지급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평가다.

그는 “10여년 전만 해도 이런 큰 사건이 터지면 한국 기업 경영진이 짐을 잔뜩 싸들고 미국에 가 시차 때문에 쉬지도 못한 채 밤늦게 한국에 전화하느라 힘들었을 것”이라며 “지금은 한국지사가 있기 때문에 의뢰인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 자문에 응한다”고 말했다.

국내 진출 4년째를 맞고 있는 외국로펌들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 기업의 해외사업 자문 수요를 공략하며 법률시장에서 존재감을 점차 드러내고 있다. 최근 내수경기 침체로 한국 기업이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며 외국 로펌에 먹거리를 만들어준 영향도 컸다. 해외 유명 로펌들은 글로벌 업무 인프라를 잘 갖춰 외국법 자문 수요에서 한국 로펌보다 경쟁력이 있다.

코오롱 관련 1조원대 소송으로 유명해진 폴헤이스팅스 말고도 클리어리고틀립, 롭스앤드그레이, 코헨앤드그레서, DLA파이퍼 등 상당수 로펌이 국내 의뢰인으로부터 호평받으며 인력을 늘려가고 있다.

클리어리고틀립은 지난해 한국 관련 해외증권 발행 규모가 약 140억달러에 달했다. 법률자문계약이 삼성SDS(약 11억달러)와 제일기획의 기업공개(IPO) 등 굵직한 것만 25건이 넘는다. 2012년 국내 진출 첫해에는 규모가 약 120억달러였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한국 관련 일을 해온 홍콩 변호사 16명이 올 중반까지 모두 서울로 옮겨온다. 이용국 한국대표는 “한국 채권의 해외 발행에 관한 한 클리어리고틀립의 실적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국 진출 1호’인 롭스앤드그레이도 처음 2명에서 현재 6명으로 늘린 변호사를 내년에는 10명까지 확충할 계획이다. 서울 역삼동 사무실은 비좁아 이전을 검토 중이다. 특허를 비롯한 지식재산권 침해와 화이트칼라 범죄, 공정거래 분야 등의 해외소송에 강해 국내 상당수 정보기술(IT)기업을 의뢰인으로 두고 있다. 김용균 한국대표는 “듀폰이 웅진에도 영업비밀침해로 소송을 걸었는데 민·형사 다 합쳐 250만달러에 합의를 끝냈다”며 “예상보다 빨리 한국에서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승철 코헨앤드그레서 한국대표는 TV나 노트북, 세탁기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삼성전자, LG전자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벌이는 미국 소비자가 소송의 상대편이다.

코헨앤드그레서는 미국 본사의 변호사가 총 50여명에 불과한 부티크 로펌이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 경쟁력이다. 최근 모 그룹의 4000억원대 첨단기술 이전 관련 국제중재사건을 100% 승소로 이끌었다.

손 대표는 “한국에 진출한 모든 외국 로펌이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무난히 꾸려가는 것으로 안다”며 “내년 이후 법률시장 완전개방이 성패의 또 다른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DLA파이퍼는 국내 4대 그룹 가운데 두 곳의 해외 사업 컴플라이언스(준법 경영)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서울사무소를 연 건 2013년이지만 약 10년 전부터 꾸준히 이들 그룹과 사업 관계를 맺은 것이 인연이 돼 컴플라이언스 업무를 맡았다. 해외 소송이나 국제중재 등 분쟁과 관련해서는 건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원조 한국대표는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는 만큼 외국계 로펌의 일감도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도 성장을 이어갈 전망”이라며 “연내에 시니어급 변호사 한 명을 충원하고 호주로 파견나가 있는 변호사도 내년에 복귀시키는 등 인원 확충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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