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년 특별기고] (2) 재난안전, 액션플랜 서둘러라
최근 ‘징비록’이란 드라마를 보았다. 임진왜란과 같은 참혹한 전란을 다시는 겪지 않도록 지난날의 실책들을 반성하고 앞날을 대비하기 위해 서애 류성룡 선생이 쓴 동명의 책을 바탕으로 제작한 드라마다. 작년 4월 우리는 전 국민을 충격과 비탄에 빠뜨렸던 세월호 참사를 겪었다. 그런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한국 사회는 얼마나 철저하게 지난 잘못을 반성하고 앞날을 대비하는 징비(懲毖)를 하고 있는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1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는 과연 얼마나 더 안전해졌는가. 혹은 안전한 한국을 위해 충분한 노력은 경주하고 있는가. 지난 1월에 있었던 경기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 중 절반 이상(54.5%)은 세월호 사건 이후에도 사회의 안전 인식과 대응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대형 사고는 여전히 줄을 잇고 있다.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붕괴 사고, 장성요양병원 화재,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등 ‘안전 한국’으로 가는 길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지난 1년 정부는 그간 분산됐던 국가 재난 대응 체계를 통합하는 데 주력했다. 작년 11월 육상, 해상, 자연재난, 사회재난으로 나눠진 시스템을 통합하는 컨트롤 타워로 국민안전처가 출범했다. 세월호 참사라는 아픔 속에서 탄생한 만큼 효율적 재난관리 정책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받는 조직으로 정착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재난안전 매뉴얼 마련은 기본이고, 연구개발(R&D)을 통해 재난 극복을 위한 국가적 역량을 키우는 게 시급하다.

먼저 재난·재해 관련 R&D를 확대해야 한다. 2013년도 국립재난안전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기상·기후 조절, 자연재해 모니터링 기술 등 재난·재해 8대 전략 기술은 미국과 비교했을 때 6.3년, 일본에는 4.2년 정도 뒤떨어져 있다고 한다. 물론 정부는 2007년부터 과학기술로 재난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난 및 안전관리 기술개발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예산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2014년도 재난·재해 관련 R&D 비중은 국가 전체 R&D 예산의 1.57% 정도다. 선진국 수준인 4~5%에 훨씬 못 미치는 실정이다 보니 기술력에도 차이가 나는 것이 현실이다.

다음으로 재난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연구과제도 적극 발굴해야 한다. 자연재해 및 재난의 발생 메커니즘 규명, 재난 예방 및 영향 분석평가, 위험성 평가 기술을 통한 피해 경감 대책 마련, 재난 원인 분석 및 확산방지, 재난 복구의 효과성 제고까지 전 과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개발 전략이 필요하다.

달라진 재난 양상에 대응할 수 있는 R&D도 필요하다. 1990년대 이후로 가속화된 산업 발전과 기간시설 확대로 여객기 추락, 기름 유출, 도시시설 붕괴 등 자연재난과는 판이하게 다른 인적 재난과 도시 재난의 발생 건수와 인적 물적 피해가 급증했다. 이렇듯 내용이나 시기, 범위 등에서 다양해지는 재난의 변화 양상에 맞게 체계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R&D 기획과 시행이 효과적일 것이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재난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에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말을 했다. 수많은 자연·인적 재난을 겪으면서 반성을 거듭했음에도 재난이 반복되는 이유도 재난에 대한 안이한 믿음에서 대응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단 재난이 발생하고 나면, 이를 되돌리기엔 불가항력적일 수밖에 없다. 같은 재난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징비의 액션플랜은 바로 과학기술을 통한 준비다.

이병권 < 한국과학기술연구원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