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에 퇴직한 이모씨(62)는 경제적으로 남부러울 것이 없는 실버 세대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12년여간 임원을 지내면서 서울 도곡동 주상복합아파트 외에 현금자산을 30억원 가까이 모았다. 하지만 친구들한테도 말 못할 고민이 있다. 장남 문제다. 서울 유명 대학을 졸업한 지 2년 동안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내년이면 서른 살이다.

이씨는 “매일 새벽 학교 도서관으로 출근하는 아들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시린다”고 했다. 그는 “직장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시절에도 자녀 교육에는 누구보다 신경을 많이 썼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어깨가 축 처진 아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버지로서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정말 월급은 내 호주머니에서 나가도 좋으니 번듯한 회사에서 아들을 좀 뽑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청년 실업자 100만명 시대] 속타는 아버지들 "60세 정년 반납하고 자식 취업 부탁하고 싶은 심정"
청년 실업은 청년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부모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 고도 성장기를 보낸 이들에게 ‘청년 실업자 100만명’ 시대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들은 ‘국제시장’ 세대의 근면과 열정을 바탕으로 소득 증가와 자산 가치 상승을 동시에 누렸다.

지방 건설회사에서 3년 전 퇴사해 아파트 경비 등을 하며 어렵게 살아가는 안모씨(58)도 맏딸(27) 때문에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는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지 커피숍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딸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며 “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지만 서로 머쓱해질까봐 그만둔다”고 말했다.

청년 취업 전쟁 속에서도 장년층은 상대적으로 일자리가 넘쳐난다. 50대 이상 취업자는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최소 34만명에서 최대 49만명가량 급증했다. 반면 청년(15~29세) 취업자는 2010년부터 4년 연속 순감한 뒤 지난해 7만7000명 늘었다.

서울에 있는 중견기업에 다니는 박모씨(56)는 정년까지 4년 남짓 남았다. ‘정년 60세 연장법’이 내년 시행될 예정이어서다. 그의 첫째 아들(28)은 대학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다. 올해는 대학 4학년생인 둘째 아들(26)도 취업 전선에 나설 예정이다. 박씨는 “2년 전 국회에서 정년연장법이 통과될 때는 동료들과 함께 즐거워했지만 요즘은 마음이 뒤숭숭하다”며 “회사에 내 자리를 포기할 테니 대신 아들을 채용해줄 수 없겠느냐는 제안을 하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요즘 이런 고민을 하는 부모가 늘어나면서 이른바 ‘5060’세대는 각종 모임에서 자녀 취업 문제를 꺼내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하고 있다. 과거 대학 입시철에 그 결과를 서로 묻지 않던 양상과 비슷하다.

최근 지방 혁신도시로 이전한 한 대형 공기업 사장은 평일에 서울에 홀로 남겨둔 취업재수생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지난 2월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 길이 막막한 상태라고 한다. 지금 그의 서랍엔 국회의원, 정부 관료, 학교 동창과 지인 등으로부터 받아 놓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200여장이 쌓여 있다. “좋은 자리에 있을 때 잘 봐 달라”고 건네받은 취업 청탁 서류들이다.

“차마 버릴 수도 없고 해서 갖고는 있습니다만, 정말 미치겠습니다. 다들 잔뜩 기대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아시겠지만 현실적으로 사장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닙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요….”

■ 70만8000명

지난 10년 동안 줄어든 만 15~29세 청년층의 취업자 숫자. 2004년 457만8000명에서 지난해 387만명으로 7.2% 감소했다. 전체 취업자가 같은 기간 13.4%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