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취업, 봄은 오지 않았다] "떨어진 이유라도 알려줬으면…" '깜깜이 채용'에 속타는 취준생
“스펙도 보지 않는다는데 어떻게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거죠?”

취업재수생 이모씨(26)는 답답하기만 하다. 지난해 학점 토익 자격증 등 ‘스펙 쌓기’에 열중했지만 최종 면접에 딱 한 번 올라간 것이 전부였다. 번번이 서류나 필기 전형에서 쓴맛을 봤다. 결국 올해 성균관대 9학기째를 등록한 ‘5학년’ 신분이 됐다. 그는 “기업들이 스펙을 안 본다는 이유로 ‘깜깜이’ 채용을 늘리고 있지만 정작 떨어진 이유를 알 수 없어 속이 탄다”고 하소연했다.

롯데그룹 계열인 코리아세븐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 기업이 탈락 사유를 공개하지 않았다. 학점을 모두 채우고 1년 전 졸업을 유예한 김모씨(27)는 “지난해 상반기와 하반기 같은 기업에 같은 서류를 냈는데 처음에 떨어지고 하반기엔 붙었다”며 “왜 떨어지고 붙은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취업준비생 이모씨(28)는 “면접에서 떨어진 경우 이유를 알기가 더 힘들다”며 “누구라도 이유를 말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취업 컨설팅회사나 스피치 학원을 찾기도 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기업별로 채용제도가 수시로 바뀌면서 취업준비생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SK그룹은 올해 상반기부터 입사지원서에 학력, 전공, 학점을 제외한 외국어 성적, 해외경험, 수상경력 등을 전형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다. 대신 자기소개서, 면접, 인턴십 등을 통한 직무수행능력 평가로 합격자를 가릴 방침이다.

현대자동차도 2013년 상반기 채용부터 입사지원서에 사진, 부모 주소, 외국어 구사능력, 석·박사 여부를 적지 않도록 했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자격증, 봉사활동, 해외연수경험, 인턴경력 등의 기재를 없앴다. 대신 ‘통섭형 인재채용’을 위해 입사지원서에 다양한 인문학 서적내용을 적도록 하고 주제별 토론 면접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전력 등 주요 공기업도 지난해부터 입사지원서에 자격증과 영어점수 등 ‘스펙’ 쓰는 칸을 없앴다. 올해 채용부터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시험을 도입한다.

기업들이 여러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는 ‘스펙’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수험생 입장에선 대학입시제도 이상으로 변화 무쌍한 취업제도에 적응하기가 여간 힘겨운 것이 아니다. 서울 소재 대학에서 인문계열을 전공한 구모씨(26)는 “무역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인턴 경험을 쌓고 재무위험관리사(FRM) 등 자격증도 취득했지만 입사지원서에 쓸 수 없게 됐다”며 “나중에 또 제도가 바뀔 텐데 지금 하는 준비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다”고 말했다.

지원자의 ‘스토리’를 중시하는 곳도 부쩍 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하반기 공채부터 200자 원고지 60장의 자기소개서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취업준비생 박모씨(29)는 “우리 같은 취업 재수생에게 무슨 스토리가 있겠느냐. 멋들어지게 쓴들 그걸 믿어주기나 하겠느냐”고 토로했다.

기업의 필기시험이나 면접 절차는 더 자주 바뀐다. 현대차는 2013년 하반기 채용부터 ‘30분 동안 1000자 이내로 역사 에세이를 쓰라’는 식의 논술 시험을 도입했다. 현대자동차그룹적성검사(HMAT)에선 지난해 상반기 ‘공간지각’ 영역을 ‘도식이해’로 바꿨다가 하반기엔 ‘공간지각’ 영역을 부활시켰다.

삼성그룹은 올해 하반기부터 채용에서 ‘직무적합성평가’와 ‘창의성면접’을 추가하기로 했다. 이전에는 일정 요건을 갖춘 대학졸업자 모두에게 삼성직무적성검사(SSAT) 응시 자격을 줬지만 올 하반기부터는 직무적합성평가를 통과해야 SSAT를 볼 수 있다.

조진형/유하늘/나수지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