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마약·짝퉁·조폭·유대균의 공통점은?…'한국판 FBI' 광역수사대가 다 잡아들였습니다
국내 최대 폭력조직이던 범서방파(두목 김태촌·2013년 사망)는 지난해 사실상 와해됐다. 범서방파는 1977년 전신인 서방파가 결성된 이후 30여년간 국내 주먹 세계를 주름잡았다. 2000년대 들어서는 부동산 투자와 대부업 등 합법적인 영역으로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범서방파를 무너뜨린 건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였다. 서울청 광역수사대는 2009년 11월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회칼과 야구방망이를 소지한 채 부산 최대 폭력 조직 칠성파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유흥업소들로부터 보호비를 갈취한 혐의로 범서방파 부두목 김모씨(48) 등 조직원 61명을 무더기로 검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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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서방파 일망타진은 치밀한 준비의 결과였다. 조직폭력배들의 경조사를 찾아다니며 동향을 파악한 것은 물론 새로 조직에 가세한 70여명의 인적사항을 철저히 파악한 게 주효했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김상중 경감은 “피해자들을 몇 번씩이나 만나서 설득한 끝에 증언을 확보했고, 탈퇴한 조직원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계보도를 그려갔다”며 “5년여 동안 끈질기게 수사한 끝에 조직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의 핵심 수사 역량인 광역수사대는 전국 17개 지방경찰청에 각각 조직을 두고 있다. 형사 수는 471명이다. 광역수사대는 일선 경찰서가 감당하기 힘든 대규모 범죄와 지능형 범죄, 조직폭력배 관련 사건, 장기미제 사건 등을 전담한다. 송병일 경찰청 형사과장은 “대부분 10년차 이상 베테랑 형사들로 구성되는 광역수사대는 관할지역에 대한 제한 없이 전국 단위의 수사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유영철 사건’의 반성으로 탄생

경찰에서 광역수사대와 비슷한 역할을 처음으로 맡은 조직은 1986년 창설된 형사기동대였다. 조양은의 양은이파, 김태촌의 범서방파, 이동재의 OB파 등 여러 폭력조직이 할거하던 당시 이들을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경찰력이 필요했다. 형사기동대의 기능도 수사보다는 물리력을 동원한 진압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경찰팀 리포트] 마약·짝퉁·조폭·유대균의 공통점은?…'한국판 FBI' 광역수사대가 다 잡아들였습니다
본격적인 광역수사 체계는 1999년 기동수사대가 설립되면서 갖춰지기 시작했다. 경찰은 지방경찰청별로 형사기동대, 강력수사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던 조직을 기동수사대로 통합하고, 전문수사 조직으로 개편했다.

[경찰팀 리포트] 마약·짝퉁·조폭·유대균의 공통점은?…'한국판 FBI' 광역수사대가 다 잡아들였습니다
지금의 광역수사대는 2004년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에 대한 반성으로 탄생했다. 서울청 기동수사대는 2004년 7월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을 검거했지만, 이미 유영철이 21명을 살해한 뒤였다. 유영철이 서울을 휘젓고 다니며 살인을 저질렀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단일 경찰서 중심의 수사체계가 문제라는 비판의 화살이 쏟아졌다. 기동수사대는 유영철을 체포했다 놓치기까지 했다.

강상문 서울청 광역수사대 2계장은 “유영철 사건은 경찰이 수사체계 전반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작용했다”며 “범죄분석관 채용, 수사경과제 도입과 함께 보다 확대된 광역 수사체계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같은해 10월 경찰은 기동수사대 명칭을 광역수사대로 바꾸고 조직을 확대했다. 2015년 현재 전국 17개 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선 471명의 경찰관이 일하고 있다. 서울은 경찰서장급인 총경이, 나머지 지역은 경정이 광역수사대장을 맡아 지휘하고 있다.

관할 없는 전국구 ‘한국판 FBI’

471명은 서울의 일선 경찰서 한 곳보다 적은 인력이다. 하지만 광역수사대가 굵직한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원동력은 선택과 집중에서 나온다.

영화 ‘표적’의 수사관
영화 ‘표적’의 수사관
광역수사대는 운영 규정에 따라 △사회적인 관심이 큰 사건 △2개 이상 경찰서에 걸쳐 발생한 대규모 범죄 △조직폭력배 관련 사건 등을 처리한다. 첩보활동을 통해 직접 인지하거나 기획한 사건을 수사하고 고소·고발 사건은 맡지 않도록 돼 있다. 지난 5일 발생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과 같이 사회적 충격이 큰 사건이 터지면 일선 경찰서 형사들과 합동으로 수사를 벌이기도 한다.

광역수사대의 또 다른 특징은 한 사건에 대해 상당한 기간 동안 수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매일 발생하는 절도, 강도, 성추행 등 각종 범죄를 의무적으로 배당받아 처리해야 하는 일선 경찰서 형사들과는 일하는 스타일이 다르다.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범죄조직에 맞서기 위해 관할이라는 개념도 없앴다. 경찰 내부에서 건강한 경쟁을 유도하려는 목적도 있다. 2013년 11월에는 광역수사대 강·폭력팀 형사들이 필리핀에서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을 직접 체포하기도 했다.

영화 ‘무방비도시’
영화 ‘무방비도시’
이문수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장은 “미국 연방 경찰인 FBI가 주의 경계를 넘나들며 미국 전역에서 사건을 수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경찰관 입장에서 보면 규모가 큰 기획 수사에 전념해 성과를 낼 수 있어 광역수사대에 근무하면 승진에 유리하다. 지난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수사관에선 12명이 특별 승진했다. 10명 중 1명이 특진한 것이다. 수사를 통한 성취감이 크고 승진에도 유리한 광역수사대 ‘멤버’가 되기 위한 경쟁은 치열하다. 올해 초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공모에선 21명 모집에 75명이 지원해 3.6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영화 단골 소재된 ‘광수대’

대규모 조직 범죄를 장기간에 걸쳐 심층적으로 파고드는 특성 때문에 광역수사대는 여러 영화의 소재로 쓰였다.

배우 김명민이 엘리트 광역수사대 형사로 나와 소매치기 조직과 싸움을 벌이는 ‘무방비 도시’, 배우 황정민이 광수대 형사 역을 맡아 파렴치한 재벌 3세를 뒤쫓는 ‘베테랑’ 등이 대표적이다.

경찰들이 가장 싫어하는 영화 1위로 꼽힌 ‘부당거래’에서도 황정민이 광역수사대 팀장으로 등장한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부당거래에선 광역수사대 팀장이 속옷 차림으로 검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비는 장면이 나와 경찰들이 싫어한다”고 설명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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