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첫 위헌제청 후 좌천 김백영 전 판사
그 때도 '성적 자기결정권·사생활 침해' 지적

김백영(59·사법연수원 16기) 법무법인 삼덕 변호사는 26일 한 법정에서 변론을 준비하다 간통죄가 폐지됐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1990년 6월 29일 현직 판사로는 처음으로 헌법재판소에 간통죄 처벌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요주인물'이었다.

당시 4년차 젊은 판사였던 김 변호사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자신을 위로해 준 다른 남성을 만났다가 간통죄로 구속 영장이 청구된 이모씨 사건을 맡고서 "이래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간통 혐의를 받는 사람은 일단 구속하고 실형에 처하던 시절이었다.

김 변호사의 25년 전 위헌제청 결정문을 보면 간통죄를 폐지한 헌법재판소 결정문과 내용이 판박이여서 놀라게 된다.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 비밀 자유 침해를 우려한 것이다.

김 변호사는 결정문에서 "헌법은 스스로의 자유로운 성적 행동에 관한 자기 결정권을 보장한다"며 "국가 형벌권이 개입하면 사생활 비밀과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간통죄 위헌 결정의 다수 의견과 일치한다.

그는 특히 "혼인 생활이 파탄에 이른 경우에도 자기 결정권을 박탈하는 것은 행복 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거나 "간통죄 소추권 발동이 사적 감정에 의한 고소 여부에 좌우된다"고 지적했다.

전날 김이수·강일원 재판관이 각각 별도의 위헌 의견을 통해 제시한 의견을 전부 아우른 견해로 분석된다.

김 변호사는 27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결정문 내용이 알려지고서 너무 앞서간 것 아니냐는 얘길 들었다"며 "관행대로 하면 편하니까 누구나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래도 "간통죄는 가장 은밀한 부분을 가장 적나라하게 들춰서 인간을 짐승처럼 보이게 만드는 법이었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훼손하는 법이었다.

공론화시키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역사를 발전시키고 소수자를 보호하려면 하급심 판사들이 선도적 판결을 해줘야 한다"며 "1심 판사들도 최종심을 한다는 심정으로 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위헌제청 후 언론사 기자들을 직접 만나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눈 밖에 나 부산지법에서 대전지법 서산지원으로 좌천됐다.

이듬해 2월 21일에는 쫓겨나듯 법복을 벗어야 했다.

김 변호사는 "나 하나 위헌제청으로 간통죄가 없어질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며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봄이 온 건 아니지만, 나 스스로 한 마리 제비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han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