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세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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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구 기자 ] “경쟁은 루저(loser)들의 것입니다. 보통 자본주의를 경쟁과 동의어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보기엔 ‘반의어’입니다. 모든 훌륭한 기업은 독점이란 점을 기억해야 해요.”

24일 오후 연세대 백양콘서트홀. 강연장을 가득 채운 청중 앞에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 피터 틸(Peter Thiel·사진)이 섰다.

그는 간편결제 핀테크(금융+기술) 기업의 원조 격인 페이팔 창업자다. 페이스북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초기에 투자하는 등 여러 스타트업을 안착시킨 성공한 투자자이기도 하다. ‘창조적 독점’을 강조한 그의 저서 ‘제로 투 원(ZERO to ONE)’은 세계적 화제가 됐다.

‘더 나은 미래, 제로 투 원이 돼라!’란 주제로 이날 연세대 경영대학 설립 100주년 기념 초청강연에 나선 틸은 시종일관 새로운 관점의 ‘독점론’을 펼쳐 주목받았다.

틸은 “아무도 시작하지 않은 기업이 가장 위대한 기업”이란 말로 서두를 꺼냈다.

그는 “실험을 통해 이론을 입증하는 과학은 항상 2란 숫자로 시작하지만 비즈니스의 역사에선 무엇이든 딱 한번만 일어난다”며 “앞으로 그 누구도 컴퓨터 운영체제를 만들어 제2의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독점기업 구글을 생각해보라. 필적할 만한 경쟁자가 없다”면서 “창업자나 투자자 입장에서 추구할 것은 독점이지, 경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비즈니스와 스타트업에서 핵심은 독점이란 것.

틸은 “수많은 경쟁자들이 참여하는 시장에선 실패할 수밖에 없다. 창업할 때는 독점 중심으로 생각하라”고 주문했다. “창업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다른 사람들이 같은 일에 몰리는 데 안심하는 현상은 놀라운 일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일에 몰린다는 건 그것이 나쁜 아이디어란 사실을 입증한다”고도 했다.

구체적으로 창업할 때는 거대 시장보다는 작은 시장으로 시작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틸은 “페이스북은 하버드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작됐다. 너무 작은 시장이라 비즈니스 계획으로는 훌륭하지 않다는 말을 들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독점할 수 있었다”며 “큰 시장을 추구하면 어마어마한 경쟁에 내몰린다. 시장 규모보다 독점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투자자로서의 원칙도 제시했다. 트렌디한 유행어를 많이 사용하는 기업일수록 ‘경고 문구’로 생각하라고 말했다. 무분별하게 유행을 따라가는 기업은 차별화가 어렵고 경쟁으로 인한 레드오션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번드르르한 유행어를 많이 사용하는 기업일수록 알맹이는 없는데 과장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과소평가된 기업, 즉 투자할 만한 기업들은 겉치레 유행어로 표현되지 않는다. 본질을 표면에 두지 않는 사각지대의 기업을 찾아내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마크 저커버그가 창업한 페이스북과 테슬라 모터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민간우주선 개발회사 스페이스X를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틸은 “사람들이 아직 알아채지 못한 사각지대가 있느냐, 그리고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을 볼 수 있느냐가 투자의 핵심”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어 그는 “초기에 대학생들만 사용한 페이스북은 대학생이 아닌 투자자에게는 사각지대였다. 스페이스X가 개발하는 로켓의 경우 허황되다는 생각 때문에 어떤 투자자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서 “이처럼 편견을 극복하고 독점적 기업을 찾아내 투자하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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