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센트럴 지구에 있는 홍콩국제중재센터에서 직원들이 바쁘게 일하고 있다.
홍콩 센트럴 지구에 있는 홍콩국제중재센터에서 직원들이 바쁘게 일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홍콩 센트럴 지구 증권거래소 빌딩 31층의 홍콩국제중재센터(HKIAC). 방마다 여러 국가가 당사자인 중재 사건 심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홍콩, 대만 등 각국 출신 변호사와 중재인, 센터 관계자들은 건물 안을 바쁘게 오갔다. 크게 난 창 밖으로는 푸른 바다와 항구, 카오룽반도의 마천루가 한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300여건의 중재가 이뤄진 이 센터에서 변호사 비용 등으로 한 해 오가는 돈만 연 2조~3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세계 주요 도시 중 가장 높은 땅값을 자랑하는 홍콩에서도 노른자위 땅이지만 중재센터가 내는 연 임차료는 1홍콩달러(약 340원)에 불과하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따른 것이다. 이에 힘입어 중재센터는 기업들의 중재 등록 요금을 낮추고 ‘긴급 중재’ 같은 새 제도를 도입하는 등 고객 기반을 더욱 넓히고 있다. 치안바오 홍콩국제중재센터 사무총장은 “중재 분야는 호텔 등 MICE(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산업 성장의 원동력일 뿐 아니라 변호사들에게도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핵심 시장 중 하나”라며 “우리 센터는 이미 50년 전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로 국제중재의 허브로 자리 잡았지만 지금도 정부와 민간 모두 다른 나라에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률시장 전문가들은 국제중재 분야가 변호사 2만명 시대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한국 법률시장에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중재 전문가’라고 불릴 만한 변호사가 20명 안팎에 불과해 성장 가능성도 비교적 높다. 국내 중재 분야를 개척한 윤병철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중재 선진국들이 대부분 대륙법이나 영미법 한쪽에 근거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은 두 법이 적절히 조화돼 중립성을 갖췄다”며 “일본 중국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도 있어 아시아 신흥 중재 국가로 성장할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한국에도 2013년 5월 서울국제중재센터가 문을 열었지만 해마다 진행되는 사건 수가 15건에 불과해 갈 길이 멀다.

○해외 로펌과 합작·협력 많아

[Law&Biz] '국제중재 허브' 홍콩, 합작 늘며 변호사 일자리도 확대
홍콩은 이미 수십년 전 법률시장을 개방해 중재 외 다른 분야에서도 국제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서는 전체 변호사 중 절반만 홍콩 변호사로 고용하면 로펌의 국적을 막론하고 홍콩법 관련 일을 할 수 있다. 베이커앤드매켄지, 허버트스미스 클리포드챈스 등 영미권 대형 로펌들은 홍콩 변호사를 적극 고용하거나 홍콩 로펌과 합작하는 방식으로 현지화했다. 이 과정에서 디큰즈 등 일부 토종 로펌은 홍콩·중국 관련 자문과 송무를 특화해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지난해 기준 홍콩변호사회에 등록한 홍콩 변호사 수는 총 9100여명. 한국 변호사의 절반에 못 미치지만 외국 변호사 수는 1500여명으로 비슷한 수준이다. 앰브로스 램 홍콩변호사회 회장은 “법률시장 개방 이후 홍콩 로펌과 외국 로펌의 업무협력으로 다국적 기업에 대한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해졌다”며 “홍콩이 국제 금융 허브로 발전하는 데도 도움이 돼 법률시장의 국제화를 계속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변호사 수급은 시장에 맡겨

홍콩 변호사들은 일자리로 고민하지는 않는다. 정부 주도의 변호사 자격 시험을 치르는 대신 변호사 수급을 시장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학부 졸업 후 국내 로스쿨에 해당하는 PCLL(post-graduate certificate in laws)과정을 수료하면 1차 관문은 통과한 셈이지만 로펌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로펌과 계약을 맺고 2년간 수습 변호사로 실무 능력을 인정받으면 정식 변호사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제임스 전 퀸엠마누엘 홍콩지사 변호사는 “PCLL 졸업자 중 변호사가 되는 비율이 절반 정도이고, 나머지는 재수를 하거나 컨설팅 등 다른 직무로 빠진다”며 “시장이 어려울 때는 로펌들이 채용을 줄이기 때문에 변호사 수급이 자동으로 조절된다”고 설명했다.

시장의 부침(浮沈)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는 변호사들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경제의 부상으로 중국 관련 기업자문 분야 수요가 커지면서 이 분야에 뛰어드는 인력이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한 홍콩 헤지펀드 소속 변호사는 “금융회사 및 일반 기업들이 규제에 대비한 준법 감시 업무를 맡기기 위해 사내 변호사 채용을 늘리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홍콩=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