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민주화운동 손배 판결 서두르다 오해 산 대법원
1970년대 긴급조치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문인간첩단 사건’ 피해자들이 최근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했다. 대법원은 ‘보상금을 받았으면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는 민주화운동보상법 18조 2항을 들어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는데 이 조항은 헌법재판소의 위헌성 심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해당 조항에 대한 헌재 결정을 기다릴지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본지 취재 결과 드러났다. 만약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 대법원은 관련 사안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아 억울한 사람을 여럿 낳는 셈이 된다. 손배소는 민사소송이기 때문에 근거가 된 법률이 위헌이라고 추후 결론이 나도 앞선 판결에 소급 적용할 수 없다.

왜 이렇게 성급하게 판결을 내렸는지 대법원에 물었다. 대법원은 “해당 조항은 위헌이 아니라고 자체적으로 이미 결론 내렸기 때문에 더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 근거로 지난해 3월 대법원에서 나온 결정문을 들었다. 지난해 대법원은 김모씨 등 22명이 “보상과 배상은 엄격히 다른 개념인데도 민주화운동보상법 18조 2항은 합리적 이유 없이 국가배상 청구권을 제한하고 있다”며 낸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나 이 결정문이 서둘러 손배소를 기각한 충분한 이유가 되는지 의문이다. 위헌 판결은 대법원의 권한 영역이 아니라 헌재가 결론을 내려야 하는 영역임이 명백하다. 대법원이 ‘피해자들이 이미 받았다’고 밝힌 보상금도 1인당 733만~1354만원으로 당사자가 받은 피해에 비하면 약소하기 그지없다.

문인간첩단 손배소 판결에 관여한 대법관 13명 중 5명은 “보상금 지급 결정에 동의했다는 사정만으로 배상 청구를 허락하지 않는 것은 공평과 정의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이 의견에서 나오는 ‘공평과 정의’야말로 법치주의의 근간이다. 당장 ‘유신헌법 긴급조치 피해자모임’은 27일 “양승태 대법원장의 탄핵을 요구한다”는 성명까지 내며 격렬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대법원의 신중하지 못한 결정으로 우리 사회의 사법 정의가 엇나가게 된다면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양병훈 법조팀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