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통상임금 판결 D-3] '뒤집기' 판결 잇따르자…노사 모두 "상급심 가자" 소송 남발
“이럴 거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가이드라인을 왜 내놓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A사 관계자의 말이다. A사는 지난해 6월 근로자 Y씨가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Y씨가 항소를 제기하자 판결이 번복될지를 걱정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다른 회사의 판결을 보면 법원마다 제각각이어서 1심에서 이겼다고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이 2013년 말 전원합의체를 열어 통상임금 판단 기준을 제시한 건 산업현장의 혼선을 최소화하자는 취지였다. 그로부터 1년1개월이 지났지만 산업현장의 혼선이 가라앉기는커녕 확산되고 있다. 법원마다 다른 판단을 내놓는 통에 기업과 노조 모두 ‘상급심에서 판단이 바뀔 수 있다’며 항소와 상고를 제기하고 있어서다.

법조계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제기된 통상임금 후속 소송이 수백 건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도 정확한 소송 숫자를 파악하지 못할 지경이다. “향후 통상임금 소송이 최대 6000여건에 이를 수 있다”(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망도 나온다.

문제는 통상임금 소송 대부분이 하급심 판결로 끝나지 않고 3심까지 올라가는 추세라는 데 있다. 하급심이 전원합의체 취지와 다른 판결을 잇따라 내리면서 패소한 쪽에서 법원 판결에 불복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르노삼성 소송이 대표적이다. 르노삼성은 지난해 10월 근로자들과의 소송 1심에서 패소한 뒤 항소했다. 1심 재판부(부산지방법원 민사7부)는 “정기상여금과 연차수당 등이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에 해당돼 3년치를 소급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3년치를 소급하기에는 회사 사정이 너무 어렵다”며 “상급심에서 제대로 된 판단을 받겠다”고 항소했다. 대한항공 소송에선 1심에서 패소한 근로자 측에서 항소를 제기했다. 박지순 교수는 “르노삼성의 경우처럼 전원합의체가 제시한 판단 기준과 다른 판결이 나오면 하급심에서 패소한 노조도 상급심 판결이 뒤바뀔 수 있다는 기대를 갖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소송 봇물’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가 통상임금 범위를 명확히 하는 법률이나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상임금 관련 다툼을 사법부 판단에만 맡기는 건 고용부와 국회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